순교자들의 삶을 담아낸 고뇌의 작품
19.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Caravaggio(Michelangelo Merisi). Santa Catalina de Alejandría.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1598~1599]
르네상스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뭉개진 진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바로크”의 시대를 열어준 화가이다. 꾸밈과 절제 속에 일종의 허세를 추구하는 모습이 과거의 그림이었다면, 카라바조는 사실적이고 실체적이며 감정적으로 느끼게 되는 현실의 그림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에 있는 4개의 작품 중 한 가지로 카타리나 성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전 헤로니모의 그림 설명에서 다루었듯이 공통적인 특징은 곧 그 사람이 순교한 모습을 남겨 놓는 것으로 규정을 했다. 톨레도 대성당 참사관회의실과 트란스파렌테 중간 지점 “엘 에스폴리오(성의박탈)”이 그려져 있는 종교화실에 들어가면 입구 좌우에 안드레와 베드로가 매달린 십자가 그림이 있다. 안드레는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린 모양이다. 그래서 많은 미술관에서 보게 되는 작품들 중 특히, 베드로 놀라스코 주교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베드로 사도가 거꾸로 매달린 채 등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복원을 통해 원작의 섬세함과 카라바조가 드러내고 싶었던 색상의 이미지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초상화의 이미지 속에서 전통에 부합하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우리를 옆 모습으로 내려다보는 표정이 된다. 그런데 그 시선에 압도당하는 이유는 역시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의 영향과 함께 그림 속 대상의 마음 속 이야기를 눈빛과 주변의 색상으로 재현을 해 냈다는 것이다. 복원 이전의 그림은 뒤 배경이 착색현상으로 어두움 자체로 남게 되었지만, 복원을 통해 검은색 같으면서 옅은 녹색 계열이 돋보이면서 카타리나의 모습이 더욱 입체적으로 도드라지는 형태를 띄게 되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발전한 기법인 “알라프리마 기법”는 “한 겹의 칠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연필로 간단한 구도의 스케치 이외에 밑그림을 채색하지 않고 그렸던 이 작업은 르네상스의 선이 보이지 않고 마치 스푸마토 기법처럼 바로크의 그림 마무리가 부드러워진 이유이다. 특유의 신선한 느낌이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림의 수정을 최소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붓 터치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원래 이 기법을 만든 사람은 플랑드르의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였다.
직관적인 그림 기법이다 보니, 다른 그림과 달리 그림에서 느껴지는 여인의 모습과 주변 배경의 강도는 감성적으로 빨리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입고 있는 검은색 치마와 달리 두르고 있는 푸른색 천은 자신이 매달려 죽은 바퀴에 걸쳐 놓음으로 평안함을 상징하는 색상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칼의 끝에는 붉은색으로 자신을 찔렀던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카타리나가 흘린 피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칼 끝은 결국 붉은색 방석을 통해 희생의 의미를 더욱 깊게 투영하고 있음을 본다. 원래 옷은 붉은색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파란색과 보라색 그리고 라피스 라줄리 등 다양한 안료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복원가들에 의해 드러난 원 그림을 보면,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자세가 아니라 손을 펴고 칼을 상대에게 주는 포즈임을 보면서 정확한 전달을 위해 수정을 가한 카라바조의 생각과 마음이 비쳐오는 작품이다.
르네상스의 절제라는 이미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추구하고자 했던 카라바조의 몸부림은 어떻게 그림을 통해 좀 더 바라보는 이들이 그림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읽고 느끼고 반응하게 하려 했는지 그 흐름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그래서 수많은 안료들이 반복 사용되어지면서 더욱 섬세하고 사실적인 움직임 그리고 빛의 잔상을 완벽하게 다룸으로 성인의 순교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 그림이다.
카라바조의 그림 특징을 유심히 보면, 어둠 속에 숨겨진 그림을 찾기 위해 한 자리에서 20분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림의 입체적 상황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제 사진과 같은 그림의 형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카라바조의 붓 터치를 만나려면 톨레도 대성당의 종교화실에 있는 “목동 세례요한”을 보면 알 것이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따스한 스페인의 햇살을 받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듯 살아있는 그림을 만나게 해준 화가이다.
당시 회화계에서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이 카라바조의 기법을 완벽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를 시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스스로를 “카라바지스트”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 안타깝게도 칼로 상대를 죽이고 떠돌이하던 카라바조는 이미 교황청의 사면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다윗과 골리앗을 그려 교황에게 사면을 얻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기지만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30대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 드는 생각이다. 마사초가 20대에 죽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카라바조가 30대에 죽지 않았다면 바로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