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예술기행 시리즈
4. 레이나 소피아가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게르니카
1936~1939년 스페인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으나,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발달 되었던 시대도 아니니, 그 어려움음 더욱 심했을 것이다.
#히틀러 #살라자르 #무솔리니 그리고 #프랑코
이들의 독재는 비밀리에 자행된 유럽전쟁의 예고폄이었다. 1600년대 흑사병 이후 다시 유럽이 리셋되듯 인구의 엄청난 변화와 삶의 의지에 대한 욕구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묻는 일이 줄기차게 이슈가 되었던 시대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모든 이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남들이 어찌 생각하든 일상의 모든 일들이 미소였고, 삶의 이유였다. 정말 욕심이 없었으나, 반지의제왕 반지를 낀 것일까? 타인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 앞에는 물건이었고 짐승이었다.
그러한 현실을 알게 된 피카소가 스페인 대표로 프랑스에서 만국박람회 대표로 그림을 그리던 중, 히틀러의 비행기가 떨어지는 폭탄을 테스트하기 위해 바스크 지역 게르니카에 폭탄을 2일간 24대의 비행기에서 프랑코의 묵인 하에 투하한다.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 뿐이었다. 이 폭탄에 6,000명의 게르니카 사람들이 먼지와 같이 그 불구덩이의 지옥 속에서 몸이 타들어가고 찢기어 뒤섞이었다.
로마시대 바스크는 로마도 200년 넘게 정복 못하던 지역이다. 특히, 루스타니아 지역이 가장 저항이 강했다. 비리아투스를 친구들이 암살시키게 만드는 역사로 위대한 전사들이 사라졌듯이 히틀러가 노린 것은 푸랑코의 반대파 공화정치의 중심세력을 이루는 이들이 이곳 게르니카 출신이 많다는 것은 프랑코의 묵인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왕위 복권을 외치며 국민들을 이끌었건만, 슬로건을 무색케 만들어 버렸다. 왕권 회복이 아니라, 정작 독재로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그에 대한 평가는 ‘망각의 기억법’으로 남아 있으나 잊혀진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 순간을 기억하는 한 사람.
바로 피카소였다.
그는 죽어가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 속에서 피에타의 눈물을 이해했고, 미로 속에 숨어살다 나온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보았고, 나약하고 힘없이 무너져가는 시대를 보있다. 거칠게 저항할 수 없던 피카소는 단 하나를 그림에 담았다. 바로, 한 떨기 꽃이었다. 죽은 젊은 친구의 손에 들린 부러진 칼 사이로 활짝 피어나는 꽃 잎은 지지않는 저항과 함께 이유없이 휩쓸려 아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려야 했던 이해할수 없는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많은 이야기가 되고, 그 앞에 서면 감추인 것들이 새록새록 들어난다.
최근, 금지하던 사진촬영까지 허락하고보니 그림의 구석 구석 그 깊이의 흔적이 7가지에서 증가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