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자녀 고민상담> 2편
오늘은 사춘기 자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중학생 부모님 사연이며, 익명처리 후 부드럽게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중학생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어디다 털어놓아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 블로그에 문의드립니다.
중학생 아이가 작년부터 사춘기가 심해져서 지금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제가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비난과 울분을 토해내고, 그걸 견디던 아이도 이제 감정을 폭발하고 대들고 반항하는 상황입니다.
인성도 성격도 재능도 머리도 다들 부러워하던 아이였는데 커갈수록 뭔가 이상합니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며, 아이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지적하게 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지적하는 부분을 보니 아이가 ADHD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워낙 성격이 느긋한 아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고요.
아이가 ADHD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학원 1과목 숙제를 끝마치는데 최소 5~6시간이 걸립니다. 중간에 집중도 안 되는지 딴짓하는 시간도 있는 것 같고요.
이번 중간고사에서 45분 동안 수학 20문제 중 5문제 밖에 못 풀었다고 합니다. 5번까지 풀었는데 답이 안 나와서 한 문제당 여러 번 풀다 보니 30분이 지나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문제들은 시간도 부족하고 어려워 다 찍었다고 합니다.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문제는 최근 한 달간 과외까지 받으며 중간고사 수학 대비를 했다는 겁니다. 과외 선생님은 아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고요. 전 그런 아이가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건 확실해 보입니다. 게다가 하기 싫은 숙제는 최대한 미루다 못해 가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처음 검사를 받으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미리 보험도 들어두는 게 좋을까요?
오늘 새벽에 너무 답답해서 검색하다가 선생님 글 보고 이렇게 두서없이 여쭤봅니다.
어머님께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
사춘기가 세게 오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고 마음이 무너진다는 것,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사춘기까지 온 ADHD 티라노 씨를 키우면서 정말 힘들 때마다 이 생각 하나로 버텼습니다. 이 아이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한 내 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닙니다. 부모가 만들어서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아이가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해도 부모는 이를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어머님이 아셔야 할 사실
"인성도 성격도 재능도 머리도 다들 부러워하던 아이였는데 커갈수록 뭔가 이상합니다."
성실하고 착하던 아이가 사춘기에 돌변하면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부모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갑자기 돌변한 것은 아이 잘못이 아니라, 뇌가 성장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시기가 오면 사회와와 감정 조절 과정에서 뇌의 리모델링이 일어납니다. 그중 '이성의 뇌'라고 불리는 전두엽의 가지치기가 일어나, 50% 이상 급격한 감정변화가 일어납니다. 전두엽 리모델링 과정으로 인해 10대 시기에는 감정조절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데, 이를 우리는 '사춘기'라고 부릅니다. 이성의 뇌인 전두엽은 '감정의 뇌'라고 부르는, 주로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편도체 기능을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아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구나.
전두엽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져 이성적 판단이 어려워졌기 때문이구나
라고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어머님 말씀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
첫째,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울분과 비난을 토해내고, 원망과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입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엄마에게 꾸준한 비난과 원망을 듣는 것은 아이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부모조차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비난하며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엄마도 날 이렇게 인정해주지 않고 미워하는데,
이 세상 그 누가 날 사랑하고 인정해 줄까
라는 부정적 자아상이 마음 깊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둘째, 이걸 반복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 아시지요? 우리 말로는 '세뇌'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아이의 뇌에는 부정적 회로를 맡는 신경망이 활성화되고 강해져, 그쪽으로만 생각이 돌아갑니다.
사춘기 자녀에게 흔하게 하는 부모의 말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머님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입니다.)
1) 그럼 그렇지!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2) 너 때문에 엄마는 힘들어 죽겠어! 너 때문에 엄마 인생은 엉망진창이야!
3) 엄마 좀 그만 힘들게 할 수는 없는 거니? 언제 철이 들래!
4) 너 벌써 중학생인데, 아직도 이거 하나 못하니? 스스로 좀 할 수 없어? 언제까지 엄마가 다 도와줘야 해!
5) 땡땡이네 딸은(아들은) 알아서 척척하고 공부도 잘한다던데,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하나씩 아이 언어로 번역해 보겠습니다.
1) 그럼 그렇지!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 그럼 그렇지. 역시 난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구나.
2) 너 때문에 엄마는 힘들어 죽겠어! 너 때문에 엄마 인생은 엉망진창이야!
3) 엄마 좀 그만 힘들게 할 수는 없는 거니? 언제 철이 들래!
---> 내가 괜히 태어나고 존재해서 엄마가 힘들구나. 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에 불과하구나. 철이 들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해서 아직도 이 모양인 거구나.
4) 너 벌써 중학생인데, 아직도 이거 하나 못하니? 스스로 좀 할 수 없어? 언제까지 엄마가 다 도와줘야 해!
---> 스스로 아직 못하겠는데, 스스로 하는 게 맞는 거구나. 역시 난 부족하고 안 되는 사람이구나.
5) 땡땡이네 딸은(아들은) 알아서 척척하고 공부도 잘한다던데,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 한다고 한 건데, 너무 잘난 애들이랑 비교하니까 더 속상하고 열받네! 안 해! 앞으론 더 안 할 거야!!
어머님의 부정적 표현은 아이에게 이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공부를 하고자 하는 동기와 의욕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지속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으면 자칫 부정적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책하는 아이로 성장할 우려도 있습니다. 게다가 전두엽 가지치기를 하고 있어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 어려운 사춘기 시기에는 반발심으로 그나마 하려고 하던 공부까지 전부 때려치울 수도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ADHD일까요?
주의력조절에 문제가 있는 ADHD의 경우, 책상에 앉아는 있지만 길게 집중하지 못하고 중간중간에 계속 딴짓을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좋아하지 않는 과목의 경우 이 증상이 두드러집니다.
문제가 안 풀리면 적당히 별표를 치고 넘어가 다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ADHD 아이는 풀릴 때까지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주의력 전환이라고 합니다. 주의력 전환이 잘 되지 않아 안 풀리는 문제에 집착해 시험 시간 분배와 조절에 실패하곤 합니다. 그러니 제 실력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기 싫은 과목 숙제는 최대한 미루다 못해 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부분도 우려할만합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기'는 실행기능에 문제가 있는 ADHD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풀리는 문제에 꽂혀 시간 분배를 못했고, 숙제를 미룬다고 해서 전부 ADHD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아이들에게도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게다가 중학생이 되어 숙제의 양이 많아지고 수준도 높아져 따라가기 버거워져서 증상이 두드러졌을 수도 있습니다. 전두엽 가지치기 중이라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는 중학생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흔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성호르몬으로 편도체를 샤워 중인 남학생은 더 증상이 두드러집니다.
아이가 ADHD인지 걱정이 될 때는 어디서 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보험은 어떻게 하나요?
1급 임상심리사가 있는 상담센터 또는 소아정신과에 가서 풀배터리와 주의력검사(CAT)를 받으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네이버 카페에 보면 미리 성인까지 보험을 정비해 두고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마음이 급해 미처 정비하지 못하고 소아정신과로 바로 달려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ADHD인지 의심만 하고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풀배터리 검사를 받아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만약 아니라고 나오면 다행이고, 전반적인 지능검사나 심리 분석도 해줍니다. 그러니 자녀의 스트레스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 부모 자녀와의 관계 회복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ADHD 진단이 나온다면 치료를 받으면 ADHD의 여러 증상이 호전되니 좋은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입니다.
어머님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
첫째, 아이가 반항심을 보이거나 맘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고 해서 비난과 원망을 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반항하는 남학생들을 대할 때 예전부터 쓰던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 한참 반항할 때지. 오늘도 또 저러는구나.
- 아이가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니다. 사춘기라 저러는 거다.
- 내가 미워서 저러는 게 아니다. 이게 다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어서 부정적 감정을 맡는 편도체가 날뛰어서 그런 거다.
- 이 아이, 내게 빼앗긴 자율성을 되찾아가려는 거구나. 잘 성장하고 있구나!
둘째, 아이가 감정폭풍에 휩싸여 거칠게 반항하고 있다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다음 꾹 참아보세요.
아이 편도체 날뛰기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난 뒤에 말을 하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는 말을 해도 이성을 차리기 어려워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마지막 말은 이 말로 마무리합니다.
부모의 부정적 감정을 아이에게 들키지 마세요.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사춘기 아이에게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고 학습됩니다.
친구 없는 중학생 고민상담은 이메일(funnyhow80@naver.com)로 받습니다.
이메일을 주시면 사연을 각색하고 익명처리하여 포스팅과 브런치스토리 상담에 활용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많은 분들께도 귀감이 되고자 합니다. 상담 내용 공개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이메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그림크림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