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맘, 더는 후회하지 않으려 미친 선택을 했다(4편)

하나 남은 수학마저 내려놓은 학군지 adhd 남고생, 그 이후 이야기

by 그림크림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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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나 남은 수학마저 쉼을 허락해 주었더니 몇 가지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 체스를 둡니다. 모든 경기는 분석을 돌려 잘잘못을 검토하며 복습합니다. 체스 경기 외의 유튜브도 더는 보지 않습니다. 누가 ADHD 아니랄까 봐, 체스에 놀라우리만치 과몰입과 과집중을 보여줍니다.


그다음으로 놀라운 건 고입 직전 겨울방학부터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말도 못 걸게 하던 티라노가 매우 밝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중학교 때로 돌아간 듯 말입니다. 게다가 체스로 아빠와 끈끈한 관계가 생겼습니다. 틈이 어찌나 좁은지 두 남자 사이에 여자이자 엄마인 제가 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간절히 기다려온 변화가 더 있습니다. 두 절친의 배신으로 상처를 입은 중학교 2학년 이후 자발적 외톨이로 살아온 아이가 취미가 같은 온라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실제 만남으로도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방학인 이번 겨울방학에 두 번째 정모가 있었습니다. 정모를 앞둔 어느 날, 웬일인지 아빠가 새로 산 청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귀찮다며 늘 검은색이나 회색 고무줄 바지만 고집하던 아이가 말입니다. (두 남자의 사이즈가 같습니다.) "한번 입어볼래?" 혹시나 싶어 권합니다. 웬일인지 "그럴까?"라며 거절 없이 쭈뼛거리며 입어봅니다. 어라? 잘 어울리긴 하는데 바지 길이가 너무 짧습니다. (아빠 키가 티라노보다 4cm가량 더 작은데, 다리는 티라노보다 많이 짧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습니다. "거기 트렌디한 옷 많던데 같이 가서 볼래?" 이때다 싶어 매력적인 제안을 슬며시 던집니다. 어라? 거절할 줄 알았는데 "나가기 귀찮은데..."랍니다. 그렇게 티라노는 그렇게 옷을 사겠다며 우리를 따라나섭니다. 엄마 아빠랑 같이 다니면 창피하다며 집 앞에조차 안나가게 된 지 한참 되었기에 함께하는 외출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사춘기가 온 이후 몇 년 만인지. 감개무량 감지덕지 설레는 마음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근처 쇼핑몰에 갑니다. 만사가 귀찮다던 ADHD 아이가 편집숍 사장님이 권하는 옷들을 마다하지 않고 갈아입습니다. 물론 "귀찮은데..."라거나 "또?"라고 하지만요. 그렇게 요새 유행한다는 외출용 바지 2벌과 티셔츠 2벌에 모자가 딸려 입기 싫다던 후드집업까지 무려 5벌이나 옷을 사서 돌아옵니다.


전국 8도에 퍼져 있는 친구들이 정모에 참석하려고 티라노가 사는 서울로 모인답니다. "내가 없을 때 장소를 정했는데, 우리 집에서 정말 가까운 곳으로 정해놨더라?"라며 신났습니다. 드디어 정모 날입니다. 티라노는 새로 산 옷 중 가장 힙하다는 옷을 골라 입고 나갑니다. 표정이 어찌나 밝고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이를 지켜보며 제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함께 웃지를 못합니다. "이제 정말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아이 같아 보인다. 그치?" 남편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제 무리 속에 섞여도 무언가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해 보인다는 것. 더는 지구에 사는 화성인이 아닌, 진짜 지구인 같아 보인다는 것.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설사 지구인 흉내를 내는 화성인이어도 좋으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간절히 바라 봅니다. 티라노는 과연 본인이 두 번째로 한 약속을 지키게 될까요? 그래서 개학 후 수학학원을 다시 다니게 될까요?




<나와 사춘기 아들의 ADHD 이야기 2>는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ADHD 교사엄마가 ADHD 아이에게 전하는 학교생활백서> 책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늘 최선을 다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그림크림쌤이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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