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남은 수학마저 내려놓은 학군지 adhd 남고생 이야기
지난 8월 첫째 주, 두 번이나 수학학원을 빠지게 된 게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밀린 숙제가 부담되었던 것이었습니다. ADHD 아이들은 돋보기로 세상을 보는 듯, 작은 스트레스도 부풀려 크게 느끼곤 합니다. 티라노에게 이번에도 인지왜곡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ADHD 아이들의 인지왜곡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특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나고 보니 표면으로만 이해했었나 봅니다. 수학학원마저 중단이 되고 나서야 "ADHD 아이의 루틴, 정말 중요하구나! 그 날짜에 휴가를 가면 안 됐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끌고 갈 놈만 끌고 간다. 숙제 자꾸 밀리면 잘린다.'는 학군지 최상위반 방침이 ADHD인 티라노에게 다소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가 때론 쓰나미를 불러오는 그런 아이입니다. 마치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여 사소한 말 한마디, 심지어는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상처받는 아이니까요. 저는 분명 아들맘입니다. 그런데 아주 예민한 딸을 키우는 그런 기분입니다.
세 달 가까이 어르고 달래던 저는 처음으로 티라노 뜻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지난 10월 말이었지요. '지금 예전 영어 때와 같은 전처를 밟고 있잖아! 수학만큼은 안돼!'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바뀌는 12월 말에 다시 돌아가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하나 남은 수학마저 두 달간 쉼을 허락하는 미친 선택을 했습니다.
12월 말이 다가와 티라노 눈치를 슬슬 봅니다. 그런데 두 달 전 약속과 달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수학, 학원'과 같은 단어만 나와도 말도 못 붙이게 하거나 피합니다. 겨우 받아낸 대답은 돌아는 갈 건데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습니다. 12월 말에 돌아가기로 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땐 우선 두 달이라고 그냥 말한 거야."랍니다. '안 돌아갈 건가 봐. 이제 곧 고2인데. 어떡해...' 하루하루 피가 마릅니다.
종업식 전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18년 차 베테랑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이런 아이들 많이 봤어요. 두 달만 쉰다는 건 핑계였겠죠. 보세요. 두 달 지나니 복귀 날짜 미루잖아요. 두 달이 또 지나면 그때 또 미루며 안 돌아갈 거예요. 쉬게 하면 안 됐어요. 수학마저 중단된 거예요."라는 말로 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모든 과목 학습 중단의 다음 수순을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학습 중단 - 학업 중단 - 대학이나 직장 등에 소속되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의 순서를 많은 아이들이 밟아 나간다는 겁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둔형 외톨이 되지 않고, 제 밥벌이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셔야 해요."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를 위해 주말마다 자꾸 집을 알아보러 다니라는 겁니다. "너 20살 되면 엄마 아빠 살 집 미리 알아보러 다니는 거야."라며 은근히 아이를 압박하라고 조언도 해주십니다.
수학마저 위기가 오며 '청소년 무기력'으로 유명한 교수님께 진료를 옮겨 받던 중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은 절대 아니에요. 아직도 게임(체스)에 빠져 살고 있잖아요." 교수님은 날카로운 화살을 제 가슴 한가운데에 겨눕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체스잖아요." 화살을 피하려 작게 항변합니다.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요?" 결국 교수님은 화살을 제 가슴 한가운데에 직접 쏩니다.
"이제는 잘 알아요. 저랑 너무 닮았기에 당연히 티라노도 ADHD가 아니라고 생각해 너무 늦게 발견했어요. 제가 ADHD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30대 1도 뚫은 과학교사인 제가 어떻게 ADHD겠어요. ADHD 아이에게 중3 때 남과 비교하는 말로 상처를 줘서 학습 무기력에도 빠지게 했고요."
가슴에 박힌 화살을 부여잡고 겨우 이렇게 말하는데 박힌 화살 사이로 피가 스며 나오며 아파옵니다. 대기실에 설마 제 목소리가 들린 걸까요? 티라노도 울상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 애써 밝은 척 음악도 틀으며 집에 옵니다. 저는 불안을 티라노에게 들키지 않는 담대한 엄마니까요.
원고 교정해야 하는데... 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슴이 시려 몇 날 며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또 납니다. 티라노 담임 선생님도, 새로 다니게 된 정신과 교수님도, 3년 넘게 다닌 소아정신과 선생님도 모두가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엄마인 제가 잘못 선택한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쉬게 하면 안 되는 거라고, 학원을 옮기거나 어떻게 해서든 얼르고 달래서 끌고 갔어야 한답니다.
선생님들 말처럼 정말 제 선택이 틀린 걸까요?
독자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지난 12월 20일 <ADHD 교사자녀가 ADHD 아이에게 전하는 학교생활백서> 출간 후 출간 관련 일과 여러 일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간 브런치북을 다소 소홀히 하게 되어 죄송했습니다.
수학마저 그만두고 쉬게 된 티라노의 후속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연재하려 합니다. 연재는 매주 목요일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앞으로는 꾸준히 연재하며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