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 약물치료 꼭 해야 할까요?

ADHD 과학교사의 약물치료 분석 기록

by 그림크림쌤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 과학교사이자 티라노 엄마인 저도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진단 당시 담당 의사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ADHD 약을 처방하지 않아요. 커버할 수 있거든요. 지능으로."

이 말을 듣고는 어쨌든 지능이 높다고 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한 억울함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간 '특이하다,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애써온 숱한 나날들이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처럼 재생되었습니다. 소심한 저는 "커버가 가능한 거지, 커버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속으로만 외치며 진료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ADHD 진단을 받고도 1년 간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전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DHD 약을 먹으면 어떤 느낌일까 너무 궁금해 자발적으로 약물치료를 요청했고, 그렇게 콘서타 18mg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간 초고를 쓸 땐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게 ADHD 약을 먹으면 도입부터 콱 막혀 참신한 도입부 예시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거든요. 'ADHD 약이 ADHD 특유의 창의력을 막는다더니 정말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초고가 완성되고, 원고를 고칠 땐 콘서타 18mg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틀린 게 나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초고를 쓸 때처럼 재미는 없는데, 책 전체를 여러 번 읽으며 고쳐야 하니 너무 어렵고 지루했거든요.


책 모양 PDF 파일로 디자인되어 나온 원고를 교정할 땐 콘서타 18mg에 4시간 지속 효과가 있다는 '페니드 10mg' 필요시 약까지 추가로 함께 복용했습니다. 출간이 임박해 오며 더 이상 틀린 게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은 점점 커졌거든요. 수십 번 이상을 읽고 또 읽어도 계속 고칠 게 나오니 인내력을 발휘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확실히 필요시 약까지 먹으니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페니드 10mg 필요시 약은 좋아하는 공연 관람을 위해 제가 요청해 처방받은 것이었습니다. 피켓팅도 뚫고,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앞에서 멋지게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콘서타도 먹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딴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림크림, 집중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몰라서 이래? 너 진짜 한심하구나!"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치며 이어지는 딴생각을 멈추려 해도 도저히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마찰이 거의 없는 아주 매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누군가 '딴생각'이라는 공을 툭 치고 가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공이 된 기분입니다.


황당할 수도 있지만 정말 소원이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딴생각하지 않고 집중하며 공연 관람을 해보고 싶어요.


필요시 약을 요청하는 날 담당의사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날이 왔습니다. 아침엔 콘서타 18mg을, 공연 시작 직전에 페니드 10mg을 먹고 공연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어라? 머릿속이 상당히 고요합니다. '왜 딴생각이 안 들지?' 생전 이런 적이 없기에 머릿속이 조용한 게 도리어 신기합니다.


그러다 문득 딴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럼 그렇지. 필요시 약까지 먹는다고 네가 딴생각을 안 하겠니?' 싶습니다. 그러다 '딴생각하지 말고 공연에 집중하자!'라고 속으로 단 한 마디 외칩니다.

어라? '집중하자'라고 외쳤더니 정말로 딴생각이 한 번에 멈춥니다!


늘 머릿속에 봐야 할 강의와 예능이 동시에 켜져 있는 기분으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강의를 보려 애써도 바로 옆에 켜져 있는 예능에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아무리 예능 화면을 끄려 전원버튼을 눌러도 꺼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콘서타 18mg에 페니드 10mg을 먹으니 처음부터 강의 화면만 켜져 있습니다. 집중이 이렇게나 잘 될 수 없습니다. 제 귀에 꽃이라도 핀 걸까요? 아니면 제 귀에서 꽃향기가 나는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화음이 애쓰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제 귀에 나비처럼 날아들어옵니다.


어쩌다 중간에 예능 화면이 켜집니다. 꺼야겠다며 전원 버튼을 눌렀더니 정말로 화면이 꺼집니다! 살면서 이렇게 쉽게 예능 화면을 꺼본 건 정말로 난생처음입니다. 그 3시간 반 공연은 집중이 스스로 잘 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자꾸만 딴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너무 많이 속상했거든요.


결심이 스스로 잘 안되어 늘 미루거나 한참을 비비적거리다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 확실히 하루를 더 밀도 있게 보내게 됩니다. 신기한 게 결심 자체도 잘 됩니다. '걸으러 나갈까?' 하면 정말로 바로 일어나 외투가 입어집니다.


왜 바로바로 외투가 입어지는지, 왜 그전에는 잘 안되었던 건지.. 갑자기 왜 이렇게 일상이 애쓰지 않아도 편안해지는 건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던 약물치료 이전이 신기한 게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약물치료 이후의 삶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남들은 원래 이렇게 모든 일상이 쉽고 편한 거였어?" 하는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들거든요. '지구인들은 지구에 사니 편하고 좋겠다. 난 외계인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 맞는 시차에 적응하려고, 안 맞는 음식 먹으려고, 나에겐 외계어인 지구어 알아들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며 살았는데...'

이런 마음입니다.



-지구인들에게 전하는 편지-


지구인들아. 너네 우리 신기하지? 왜 남의 말 안 듣는지, 왜 본인 말만 하는지, 왜 기상도 취침도 어려운지, 수업시간에 왜 자꾸 수업 방해하는지 다 이해가 안 가지?


너네도 우리 외계 행성에 와보지 않을래? 우리 행성에 와서 외계어로 된 수업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원래 자는 시간에 깨야 하고, 깨어 있던 시간에 자보지 않을래? 그러면 조금은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지구에는 지구인만 사는 게 아니라 외계인도 함께 산다는 걸 조금은 알아주면 어떨까? 우리나라에 한국인만 사는 게 아니듯, 이 세상에는 ADHD가 아닌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는 걸. ADHD나 자폐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신경인들이 산다는 걸 말이야.


특이하다는 소리 이제 그만해 줘. 우리가 볼 땐 너네가 더 신기하거든. 알람을 듣고 어떻게 한 번에 몸이 일으켜지는지, 어떻게 공연 볼 때 딴생각을 안 할 수가 있는 건지 말이야.

옛날 추억의 드라마 <브이>를 아는 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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