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던 초6, 어이없는 이유로 영어학원 위기가 왔다.
사소한 이유로 인해 잘 다니던 영어학원의 위기가 왔다.
그렇게 두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영어는 1단계, 수학은 2단계 레벨업이 이루어졌다.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실력이 오른 것이 아니었다. 2년간 개인지도를 받으며 쌓은 실력이 레벨테스트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던 거였다. 당시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ADHD라 실수를 너무 많이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원입학 이후에야 제 수준에 맞는 반에 뒤늦게 들어갈 수 있었다.
"티라노야, 숙제해야지~"라고 했을 때 숙제 시작을 두어 번 미루긴 했지만 과외 때부터 자리 잡힌 숙제하는 습관은 학원입학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티라노는 하루에 꼬박 2~3시간 동안 그날 분량의 영어나 수학, 그리고 학습지 숙제들을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초등 6학년 제주도 여름휴가 때의 일이다.
휴가 4일 치의 숙제가 걱정되었나 보다. 티라노씨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가방에 영어와 학습지 숙제 4일 치를 주섬주섬 챙긴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하자 티라노씨가 내게 묻는다. "엄마, 1시간 동안 할 일도 없는데 학습지 숙제나 할까?" 혹시 몰라 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 안에 학습지 숙제를 넣어놓고 있었던 터였다. "오 좋은 생각인데? 그럴래?"라고 반기며 가방 안에서 학습지 숙제를 꺼내 준다. 비행기 좌석의 좁은 테이블 위에서 국어와 한자, 그리고 수학까지 오늘 분량의 학습지를 순식간에 풀어낸다.
찍으려 하자 숙제를 하다 말고 날 쳐다보는 초6 티라노숙제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밤에도 계속되었다.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캐리어에서 영어학원 숙제를 주섬주섬 꺼내 침대에 드러누워 숙제를 했다. 그날 분량의 숙제를 마치면 영어선생님께 인증사진을 보낸 후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그날 분량의 숙제를 해놓고 나야 마음이 놓이는 티라노씨였다. "오늘 숙제 다 안 하고 자면 내일 해야 할 숙제가 더 많아져서 감당이 안 돼서 내일 너무 힘들어."라는 게 이유였다. 휴가지에서도 얼마나 성실하게 숙제인증을 했는지 도리어 영어선생님께서 '휴가니까 숙제보다는 휴가에 좀 더 집중해도 좋아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정도였다.
2주 연속 집안행사 참여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여름휴가 한 달 후, 2주 연속 주말마다 중요한 집안 행사가 있었다. 영어학원은 평소에도 숙제가 많은 편이었다. 하필이면 4권의 교재들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겹쳐서 숙제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티라노는 2주 연속 집안 행사를 따라다니느라 총 4일 치의 숙제가 밀리게 되었는데, 평소로 치면 일주일 치 분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때부터 밀린 숙제들 때문에 친구들은 집에 가는데 혼자만 학원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영어학원에 다녀온 날이면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되었다. 영어학원에 다녀온 날마다 '너무 싫다, 영어학원 그만두겠다'며 울고 불며 감정의 폭풍에 휩싸인 티라노를 달래느라 몇 시간 동안 진을 빼야만 했다. 한번 일어난 감정 폭풍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몇 달째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봐도 말이 안트여 울기만 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듯 참 힘든 시기였다. 감정표현이 원활하지 않고 감정조절이 잘 안 되기에 울음으로만 힘든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티라노씨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티라노씨는 어린아이가 아니며, 한 학기만 있으면 중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설마 2주 연속 집안 행사 좀 다녔다고 영어학원 그만두게 된 게 아니겠지...'
당시엔 '우연의 일치겠지. 설마 이게 말이 돼?'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휴직까지 하고서 ADHD를 비롯한 사람 심리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꽤 많이 해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가 절대 아니야!'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