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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미 Aug 17. 2023

1. 시작, 2013년 제주로


배낭 메고 온 제주도, 2013년


 우리 둘은 인도를 시작으로 남미까지 1년을 여행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한 달안에 결혼식을 하고 다음 날 제주도 비행기를 탔다. 배낭에 입을 옷만 챙겨서 여행을 떠나듯이 제주도로 향했다. 우리의 미래가 보장된 건 이틀이었다. 애월에서 이틀 숙박을 예약했고, 자동차도 빌렸다. 결혼식으로 피곤하니, 이틀 정도는 쉬고 싶었다. 하긴 1년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도착한 날은 푹 쉬고, 다음날 그 유명한 ‘오일장 신문’을 구했다. 구했다기보다는 동네만 돌아다녀도 쉽게 눈에 보였다. 시내에 한 달 계약을 해주는 오피스텔을 찾아냈다. 50만 원 정도면 한 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단 계약을 하고 다음날 오피스텔로 짐을 옮겼다. 짐이라고 해봤자, 우리가 1년을 메고 다닌 배낭뿐이었다. 차를 반납하고 공항에서 오피스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이제부터 제주도의 여행 같은 삶이 시작되겠구나.’


 매일 오일장 신문과 인터넷 정보를 찾아봤다. 전화해서 괜찮은 곳은 직접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동네를 걸어서 집을 찾으면 그곳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지만, 직접 걸어가서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이번에 가는 곳은 ‘함덕’이라는 마을인데, 집주인이 아침 9시에 오라고 하셨다. 제주시내에서 함덕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7시에 버스를 탔다. 실제 함덕에서 시내는 3~4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집을 확인하고, 약속 시간이 남아서 마을을 둘러봤다. 작은 돌담길도 정겹고,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도 마음에 들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던 차도를 건너니 바다가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라면 이곳에서 무조건 살아야지.’ 우리 둘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우리가 연애시절 제주도 여행에서 함덕을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서 우연이 아니라, 운명을 슬쩍 끼어 넣기도 했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바다가 더 푸르고 맑게 보였고, 하늘은 넓게 우리를 포용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들이 우리를 꼬셨으리라.


유혹하는 함덕 바다의 빛깔


 약속시간이 다 되어 그 집으로 향했다. 새로 지어진 집이었고, 작은 마당도 있었고, 방도 3개나 있었다. 거실도 넓고,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길러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2013년 당시 연세로는 300만 원이라는 비싼 세였지만, 한참 지난 후에는 우리 집이 함덕에서 저렴한 편이 됐다. 보증금도 새집이라서 백만 원이 필요했고, 총 400만 원에 1년을 살 수 있게 됐다.

*연세 : 제주도는 집세를 월로 내지 않고 1년에 한 번 내는 개념의 연세(년세)


매일 봐도 새로운 함덕 바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은 이주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어느 지방이나 사투리를 쓰고, 텃세가 있고, 이사 온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당연한 이치다. 평생을 그곳에서 사셨던 분들 틈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제주도는 섬이고, 외지인들한테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이런 낯선 이질감은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 쓸데없는 돌멩이일 뿐이라서 저 바다에 던져버렸다. 어쩌면 제주도로 오면서 가져오지 않은 짐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덕이라는 동네에 끌려서 그날 계약을 했다. 집을 둘러보고 동네 어귀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결정했다. 그 집은 맛이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맛있게 느껴졌다. 함덕이 우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 같았다. 집에서 바다까지 천천히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바닷가는 염분이 많아서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다 습하고, 염분이 많다. 바닷가라고 특별히 살기 힘든 건 아니다. 5분 거리에 이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면, 그보다 더 한 무엇도 감수할 수 있다.

 다음 날, 가방을 챙겨서 우리 집에 들어왔다. 드디어 우리도 우리 집이 제주도에 생긴 것이다. 집주인께서는 짐이 언제 들어오냐고 물어봤지만, 우리가 가져온 짐은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큰 집에 덩그러니 우리 둘이 있었다. 이 집을 채우는 일은 오래 걸렸다.


서우봉을 품어주는 함덕 바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걸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배가 고팠다. 집에는 냄비 하나 없어서 라면조차 끓여 먹을 수 없었다. 첫날 먹었던 집보다 훨씬 허름하고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제주도에서 가장 흔한 고기 국숫집이었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마음까지 녹여줬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혼자서 작은 식당을 바쁘게 운영하고 계셨다. 나는 우리도 이곳 주민이라고 자랑을 하고 싶었다.

 "저희 이사 왔어요." 뜬금없는 말에도 국수만큼이나 따뜻하게 답해주셨다.

 "잘 왔다. 너네가 부지런히 살면 굶어 죽진 않는다."라고 말하시고는 사는 곳을 자세히 물어보셨다.

 "아, 양씨네 이사 왔구나. 잘 왔어."

 처음 보는 분의 '잘 왔다'는 이 말이 그 어떤 플래카드와 꽃으로 환영인사를 해주는 것보다 화려하게 느껴졌다.

 '그래, 우린 잘 온 거야. 잘한 거야.' 우리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충전하고 가게를 나왔다.


함덕 서우봉 해변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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