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문 연재를 하던 게 있어서 한동안은 취직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만 글을 쓰면 되는 일이었고, 오래 해 온 일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겐 제주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둘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시간이 일 년이 넘게 지속됐다. 얼마나 아름다운 제주생활이 이어질지 상상이 되는가. 모두 꿈꾸는 그런 제주생활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실 우리 둘은 설레발을 칠 정도로 기대하는 일은 별로 없다. 여행할 때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막상 좋으면 그때 실컷 좋아한다. 걱정거리와 기대감을 살짝씩 빼고 살려고 노력한다.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잔잔한 함덕 바다처럼 살고 싶어 한다. 그렇게 잔잔한 함덕 바다도 파도가 세차게 몰아칠 때가 있고,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잔잔한 바다가 되는 것처럼 살면 된다.
함덕 서우봉의 노을
-결혼한 삶의 변화에 낯설어질 때, 썼던 글을 이곳에 적어 본다-
"누가 맨날 치약을 중간에서 짜는 거야?!"
둘만 사는 집에서 나오는 이 말은 물음이 아니라 화가 섞인 생색이다.
네가 매일 중간에서 짜고 있는 것을 내가 매일 알뜰하게 끝에서부터 올려 짜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아주 작은 일들이 쌓이고, 거기에는 다른 일들도 같이 쌓여서 애꿎은 치약이 순간 터지고 만다.
"내가 중간부터 짜지 말라고 했지!!"
처음에는 이런 나쁜 습관은 고쳐야 한다면서 바꾸려고 했을 것이다. 치약은 중간을 짜서 쓰나, 끝을 짜서 쓰나 마지막에는 알뜰히 다 짜서 끝까지 쓰게 된다. 정말 바꿔야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짜는 습관이 나쁜 거였을까, 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못하고 치약에 덤터기를 씌우는 자신이 고쳐야 하는 거였을까.
죄 없는 치약은 순간 내동댕이쳐지고, 집안 공기는 차가워진다.
사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비약이 심한 건 어쩔 수 없겠다. 치약 전쟁을 상상하며 쓴 이야기다. 내가 결혼을 하고 치약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사실이다. 매일 쓰는 치약이 신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놀라웠다. 취향도 없이 마트에서 대충 사는 치약이 어떻게 아름다운 신혼에 끼어들 수 있을까. 사실 신혼 때는 상대방의 새로운 습관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을 내가 못 받아들이면, '저 나쁜 습관을 고쳐줘야겠다'라는 터무니없는 도전을 하게 된다. 부모님도 30년 넘게 못 고친 습관을 자신이 어떻게 고친다는 말인가. 거만하게까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여주고, 안 되는 부분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노력이라는 하찮은 능력이 있으니까. (노력이 하찮다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치고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신혼은 연애할 때와 다른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물론 나는 치약을 두 개 놓고 썼다. 서로의 치약이 있으면 중간에서 짜든, 끝에서부터 짜든 상관없다. 치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습관에서 벗어난 달라진물건을 보면서 어제의 서운한 일들이 투영됐을 뿐이다. 나에게 서운하게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화난 마음이 치약을 보면서 터져 나왔을 뿐이다. 치약은 죄가 없다.
이제는 내 물건이 아니라, 같이 사용하는 우리의 물건이기 때문에 서로의 습관이 묻어나게 된다. 그 물건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서운했던 일은 그때그때 말해야 하고, 화난 마음은 대화를 하면서 풀어야 한다. 죄 없는 치약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면 안 된다. 내가 바뀌어야 상대방도 바뀐다.
우리 욕실에는지금은 물론 하나의 치약이놓여 있다. 왜냐하면 치약보다 더 큰 일들이 많기 때문에 치약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 겸 욕실에서 걸리는 습관이 또 있다. 이것은 마치 귀신같은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는 일이었다. 바로 화장실 휴지였다. 화장실 휴지가 앞으로 감겨 있는 경우와 뒤로 감겨 있는 경우가 있다. 별 의식 없이 이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꾸 휴지가 뒤에서부터 풀어져 나오는 게 이상했다. 내가 앞으로 풀어지도록 걸어놓은 거 같은데...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남편은 뒤에서 풀어지도록 두루마리 휴지를 다시 끼어 넣었다고 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남편도 자꾸 반대로 끼워져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하게 서로의 의견을 어필했다. 왜 앞쪽으로 풀어져 나오는 것이 좋은지, 왜 뒤쪽에서 풀어져 나오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서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웃긴 일이었다. 두루마리 휴지 안쪽을 사용해야 하는 것과 거친 면이 어디냐부터 아주 논리적인 토론이었다. 이런 일은 결론이 없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화장실을 더 많이 사용하는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도 다른 곳 화장실을 가서 두루마리 휴지가 어느 방향으로 꽂혀 있는지 보면서 피식 웃게 된다.
다른 불편함, 다른 문제, 다른 불만을 치약이나 휴지 같은 전혀 생뚱맞은 곳에 쌓아 놓지만 않으면 된다. 다른 불편함은 그곳에서 얘기하고, 다른 문제는 논의하고, 다른 불만은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사실은 자신의 마음에 쌓아 놓았으면서 괜히 치약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마치 나는 이렇게 올바른데, 네가 잘못된 거고, 네가 고쳐야 하는 거였잖아... 이런 마음이 치약을 본 순간 확 쏟아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2020년 어느 날 신혼을 회상하며 쓴 글)
제주도의 아름다운 오름
신혼의 첫 번째 미션은 '혼인신고'다. 혼인신고는 결혼식과 다르게 준비할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법적인 부부라고 나라에서 증명해 주는 쓸데없는 일 같지만 행정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혼인신고를 하면 헤어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주소 이전 때문이라도 행정적인 일은 필요했다. 제주도민이 되는 것은 주소를 이전하면 쉬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제주도민증이라는 새로운 특전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주민등록증 뒷면에 새로 이사한 주소 한 줄이 더 새겨질 뿐이다.
우리는 동네 리사무소를 찾아갔다. 리사무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리사무소에 갔더니,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주소이전을 하면 등본이 깔끔해진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혼인신고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간단하지 않았다. 증인이 필요한데, 증인이 없을 경우는 부모님 도장이 필요했다. 이때 알았다. 함덕에는 도장 파는 집이 없다는 것을. 읍내에도 없고, 도장은 무조건 시내에 가야만 했다. 시내는 제주시 도심을 이야기하는데, 신제주와 구제주로 나뉜다. 공항을 중심으로 봤을 때, 신제주는 애월 쪽이고 구제주는 동쪽이다. 함덕은 동쪽 방향이므로 구제주와 가깝다. 모든 필요한 일을 하는 시청과 세무서 등은 구제주에 있고, 도청은 신제주에 있다. 어쨌든 도장 하나 파려고 구제주까지 가야 했다. 부모님 도장을 몰래 파서 못된 짓이라도 하듯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는 리사무소에서 못하는 일이고, 읍사무소를 가야 한다. 가장 작은 마을 단위가 '리', 그리고 읍, 면, 동, 시, 도 순이다. 도시에서만 산 사람들은 리사무소와 읍사무소를 모를 수도 있다. 리사무소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동사무소에서 처리 안 되는 일은 구청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함덕리는 조천 읍내에 속하기에 조천읍사무소를 가야 한다.
우리는 차가 없으니, 버스를 타고 읍사무소에 갔다. 조천읍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했는데, 카드가 들어가 있는 봉투 하나를 주셨다. 열어보니, 결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처음 해보는 혼인신고라서 도시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특별하다고 생각되고 따뜻했다.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결혼 축하 카드와 제주도 주소가 새겨진 주민등록증, 그리고 우리 둘 이름만 기록되어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보면서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이제 우리는 제주도민, 함덕리민 부부이다.
함덕 서우봉 바다 파도 치던 날
집 마당에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정집에 두고 온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빨리 데리고 오고 싶었다. 우리 보금자리를 완성체로 만들려면 고양이가 있어야 한다. 십 년을 넘게 같이 산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와야 했다. 친한 언니가 제주도에 놀러 온다고 해서 언니한테 한 마리를 부탁했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언니와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얌전한 고양이 '버미'는 비행기도 무사히 타고 버스도 잘 타고 집에 왔다. 그다음은 '요다', '재동이', 그리고 남편이 키우다 1년 여행을 가면서 탁묘를 맡겼던 '달이'까지 데려왔다. 그렇게 고양이 네 마리와 우리 둘은 함덕에 살게 됐다.
함덕은 작은 마을 같으면서도 살고 있는 사람은 많다. 큰 호텔이 두 개나 되는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물론 4~5년 후에는 관광객으로 넘쳐나게 됐지만, 2013년 당시에는 조용한 동네였다. 저녁 9시만 되면 동네 불이 꺼지고 문을 여는 가게가 거의 없었다. 술집도 거의 없거니와 12시면 문을 닫는다. 보통 집에서 안주를 해서 술을 마셔야 하는데, 우리 둘은 요리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초보 주부였다. 인터넷을 뒤져서 먹고 싶은 음식은 직접 해 먹다 보니, 몇 개 월안에 우리는 웬만한 요리를 훌륭하게 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편은 낚시를 좋아해서 날이 좋을 때는 같이 낚시로 잡아 온 무언가로 요리를 했다. 그것이 그날의 술안주가 되었다. 이름 모를 물고기를 잡을 때는 동네 삼춘들에게 물어보고, 위험한 독가치는 삼춘에게 드리기도 했다.
제주도는 친한 이웃을 이모라고 하기보다는 '삼춘'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삼춘은 아무에게나 쓰면 안 된다.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에게 삼춘이라고 해야지, 몇 살 차이도 안나는 이웃에게 삼춘이라고 하면 그분은 '내가 나이가 그렇게 많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해녀삼춘'이라고 하는 말은 거의 맞다. 해녀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셔서 해녀삼춘이라고 흔히 부른다. 삼춘이라는 말이 어색하면 이모라고 해도 되고, 할망이라고 해도 되고, 아즈방, 아즈망(아저씨, 아줌마)라고 해도 된다. 단지 삼춘이라고 부르는 건 더 친근하고 그 괸당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다. 괸당은 친척을 의미하는 말로 대부분 친척들로 이뤄진 제주 삶에서 당연한 울타리다. 지금은 괸당 정치니 뭐니 해서 말들이 많지만, 시골에서는 당연한 친인척 챙기기 문화다. 친척만큼 가까워진 사람들은 우리 괸당이라고 해서 알뜰살뜰 챙겨주신다. 그. 러. 나. 차가운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는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이웃은 낯설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것은 좋지만, 우리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게 되는 이웃은 부담스럽다. 이건 우리만의 적정 울타리다.
동네 이웃은 새로 이사 온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은 없고, 약간의 정은 존재했다. 우리 집 현관 문고리에 먹거리가 걸려 있을 때는 많은 정이 우리에게로 왔다. 함덕은 그런 곳이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과 더 잘 어울렸을게다. 동네 올레를 걷다 만나는 할망에게 인사를 건네면 처음에는 대답도 안 하신다. 귀가 잘 안 들리셔서 못 들으셨나 보다 하고 넘어간다. 몇 번을 그렇게 인사를 하던 어느 날, 할망이 내 인사에 답을 해주셨다.
"그런데 넌 누구니?"
아, 할머니에게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자꾸 인사를 했던 거구나. 저기 이사 왔다고 말씀드리니, 다음부터는 한 마디씩 말씀을 해주셨다. 한 번은 키우시는 강아지도 보여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함덕리민으로 잘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