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의 차이

경험에 의한 차이

by 강주미

입장의 차이는 경험에 의한 차이가 많다.

소금과 설탕의 차이, 감자와 토마토를 소금과 설탕 중 어느 것에 찍어 먹느냐의 차이

앞과 뒤의 차이, 영화를 보다가 앞으로 감기와 뒤로 감기의 차이


1.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로 결혼을 하고 나면 사소한 일로 부딪힌다고 한다. 얼마나 사소한 일로 싸우게 되는지, 안 맞는다는 결론까지 내는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처음 끓여 본 콩나물국에 대해서 맛 평가를 감히 한다면, 그 국을 뺏어서 버리는 사태까지 간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30년을 넘게 따로 살다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같이 사는 일이 낯설기는 서로 마찬가지다. 치약을 중간에서 짜는 것과 끝에서 짜는 일이 서로에서 짜증이 될 수도 있다. 치약을 끝에서 짜는 사람은 매번 중간에 꺾인 부분을 보면서 ‘또…’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끝에서부터 차근히 밀어 올린다. 또 중간에서 짜는 사람은 매번 욕실에서 들려오는 잔소리를 들으며, ‘또…’라는 생각을 하며 관가 해 버린다. 치약이 뭐라고 이런 튜브 형태로 만들어서 달콤한 신혼에 찬물을 껴 얻는가. 치약을 다른 방법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근본적인 해결은 서로에게 있다. 서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래서 우리 집 욕실에는 치약이 2개가 있다.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 또 위기는 찾아온다. 미드를 열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잠깐 휴대폰 메시지를 보느라고 미드 중요한 장면을 놓친 내가 남편에게 부탁했다.

“왜 저렇게 됐어? 못 봤어. 앞으로 돌려줘.” 이 말이 어디가 잘 못 된 건지, 눈치채지 못했다면, 옆 사람에게 얘기해 보길 권한다. 이 말 한마디로 우리가 얼마나 큰 파장을 느끼게 될지 이때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다.

“앞으로 라니? 뒤로 돌려달라고 해야지. 하하하하”

“무슨 말이야? 앞에 부분 못 봤으니까 앞으로 가야지.”

“아니, 뒤로 감기잖아. 뒤로 가야지.”

비디오테이프를 보던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테이프 감는 시절, ‘앞으로 감기’와 ‘뒤로 감기’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따져봤다. 나는 ‘앞으로’가 맞았고, 남편은 ‘뒤로’가 맞았다. 우리는 그 시절 한 영화를 몇 번이나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는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영화는 소장하기도 했다. 대여를 하건, 구매를 하건, 비디오테이프는 같은 영화를 마음껏 몇 번이고 돌려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장면만 돌려가면서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보고 싶은 장면이 영화 시작 부분에서 한 시간 후에 나온다면, 어떻게 돌려 볼 것인가. 뒤로 감기를 할 것인가, 앞으로 감기를 할 것인가. 나는 뒤로 감아야 1시간 지점을 볼 수 있는 명령 체계를 가졌고, 남편은 앞으로 감아야 1시간 지점을 볼 수 있는 명령 체계를 가졌다. 우리 둘이서는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서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싶어졌다. 사실 한 번도 '앞으로'와 '뒤로'에 대한 차이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걸로 의견이 갈린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친언니는 나와 같은 의견으로 내가 한 표를 먼저 얻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남편이 한 표를 얻어 동점이 됐다. 이런 식으로 전화를 여러 사람에게 해봤지만, 비슷한 점수를 얻었다. 그렇다면, 집안 지침서 같은 게 존재해서 그 집은 모두 앞으로 감기로 하자는 것인가. 그러니까 처음 비디오테이프를 접했을 때, 엄마가 던진 한마디에서 결정되는 것인가.

“영화 다 봤으면, 앞으로 감아놔. 엄마 이따가 처음부터 다시 볼 거야.”

“영화 다 봤으면, 뒤로 감아놔. 엄마 이따가 처음부터 다시 볼 거야.”

다행히 나에게는 친언니가 두 명이 있어서 이것을 확인해 볼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 한 표를 지지해 준 언니 말고, 다른 언니에게 물어보니, 언니는 남편에게 한 표를 줬다. 그러면 부모님의 영향, 즉 집안내력도 아니다. 왜 우리는 앞으로와 뒤로로 갈라졌을까.

이걸 물어봤을 때, 모두 반응이 이건 의견이 아니라 너무 당연하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겠어? 라는 식의 반응이다. 그렇다. 나도 남편도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서로가 반대로 이야기하는 이 상황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내 기준에서 앞으로 돌려줘’라고 말하면, 자신이 생각한 반대로 버튼을 누른다.

‘앞으로’와 ‘뒤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을 결론 내려는 무모한 질문이 아니라, 왜 입장의 차이가 나게 된 지 궁금해졌다. 경험에 의해서 기준이 생긴 것은 맞는데, 왜 그런 기준의 차이를 보일까.

나는 이럴 때마다 고대 철학자가 생각난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여유가 생겨서라고 했다. 풍요로운 시대에 철학자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아마 우리도 여유롭고 심심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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