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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May 31. 2020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 속 사랑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누구나 한 번 쯤 흥얼거렸을 노래 가사이다. 아무 생각없이 따라 부르는 노래이건만, 기가 막히게도 우리네 현실과 딱 맞는 노래 가사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이라니. 무슨 말놀이도 아니고 이율배반적인 얘기인지...

오래전인가, 사랑에 관한 재미있는 정의를 라디오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인간에게 사랑의 기회는 크게 세 번 찾아온단다. 첫 번째는 순수한 나이에 하는 첫사랑, 즉 풋사랑이고 두 번째는 배우자를 찾기 위한 사랑이며 마지막은 반려자가 있는 상태에서 찾아오는, 즉 해서는 안되는 사랑이란다.

이 중에서 세 번째가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사랑이라나... 기억을 더듬자면 그 때 디제이는 우리 모두 세 번째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지극히 도덕적인 교훈이 담긴 멘트로 사랑에 대한 정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조심해서 빠지지 않을 사랑이라면 굳이 왜 치명적인 사랑이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조심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빠지는 사랑이기에 치명적인 것이라 말하는 것일 게다. 오죽하면 영어에서도 사랑을 " falling in love"라고 표현을 하겠는가?

자신, 즉 자기 의지가 사랑의 감정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지상 위에만 머무를것 같았던 고매한 의지가 땅 바닥으로 추락하는게 사랑이라니... 그러니 어찌 사랑이 쉽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 는 이러한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여주인공의 체험적 독백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잠깐 영화 얘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영희(김민희 분)는 불륜이라 칭하는 사랑에 빠지고 도피하다시피 떠난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하게 된다. 매력적인 영희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보라는 지인들을 향해 영희는 술취해 주정부리듯이 절규를 한다. "사랑! 그래 나도 사랑해보고 싶어. 그런데 사랑이 어디있어? 어디 있는 줄 알아야 사랑하지!"

영희 말이 옳을지 모른다. 사랑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또한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흔하디 흔하지만 찾아보면 귀하디 귀한게 바로 사랑이다.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해야지 한다고 해서 하게 되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사랑이다.

빠지지 말아야 할 사랑에 빠져서 삶의 진흙탕 속에 허우적 거리는 영희의 모습은 인간적인 동정을 유발한다. 하지만 실제로 임자 있는 남자를 빼앗은 것에 대한 비난으로 남의 사랑에 감정을 이입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주홍글씨를 주인공 영희가 아닌 배우 김민희에게 새기려는듯 영화 평은 극과 극을 달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영화가 나왔을때 영화적 시선과 현실의 시선을 같이 투영한 탓에 감독과 여배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것도 분명했지만 현실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홍상수 영화에 대해 좀 더 언급해보면, 남성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하나의 성적인 대상이나 유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 여지가 있었던 홍상수 감독의 다수의 작품은 여성인 나로서 불편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인간 내면을 상황 설정을 통해 묘하게 파고드는 예리함이 있기에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홍상수 감독은 상당히 여성적 관점에서 상처받은 여성의 성장에 많은 비중을 두고 영화를 만든 듯 하다. 그것이 실제 김민희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번 영화는 분명 어떤 변화를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왔음에는 틀림없다.

치명적인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영화에 대한 평이 되어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내가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정당한 판단의 기준이 된 채 용인되어 그의 영화를 평가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여하튼 윤리 문제를 불러오는 사랑이든 배우자를 찾기위한 사랑이든지 간에,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게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 자신의 의지를 바닥으로 확 곤두박질 시키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전율을 주기도 하는게 사랑이라니... 무서워서리 콘크리트로 심장을 단단하게 해 놓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심장이 돌처럼 단단해진들, 마음의 방문을 확 다 열어 놓은 들, 사랑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알 수가 없기에 늘 확률 게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닐런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낮은 확률적 게임에서 진짜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건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 상황을 다 맞춰놓고 기다리는 사랑은 그냥 하는 사랑이지 빠진다는 표현이 필요없다.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은 이성과 의지의 허우적거림을 동반한다. 이런것이 싫다면 마음에 빗장을 채워야한다. 최소한 확률게임에 노출될 위험을 줄일수는 있지않을까?

결국 사랑의 주제로 산만한 내용을 거슬러 오다보니 사랑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봄이 유리하다고 말하고 싶다. 콘크리트 철벽같은 심장의 방어선도 봄바랑 살랑 불어오면 틈새가 살짝 벌어질 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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