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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May 27. 2020

오래오래 같이 살자

지금 내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야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가 빗소리에 다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들리는 빗소리가 나의 오감을 깨웠고 나는 잠시 비몽사몽간에 감상에 빠졌다가 힘들지 않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느새 비는 자취를 감추었다. 상쾌한 바람이 거리의 물기마저 깨끗이 날려버린 5월의 하루이다. 늘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니나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나는 오늘도 니나의 들썩이는 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행여 코고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17년을 한결같이 껌딱지처럼 데리고 살아온 반려견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것도 앞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개를 옆에 두고 마치 아무일도 없이 평상시처럼 산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니나를 떠올리다보면 최악의 순간들만 상상이 돼서 나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향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앞이 안보여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전기 줄에 목이 걸려 사고를 당하지는 않는지, 괜히 무거운 물건을 건드려서 떨어져 다치지는 않을지... 주로 목숨과 관계된 별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런 상상말이다.


배변을 하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 않아 버린 채로 집안을 돌아다녀서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상상이 아닌 일상이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보니 상상력이 커져갈 수밖에.... CCTV라도 달아서 밖에서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밖에서 일하다가 멍하니 집안을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걸어 다니는 니나를 화면으로 보는 건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가족들과 의논해서 최대한 니나를 혼자 두지 않게 서로의 일정을 조절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요즘은 이런 저런 생각들, 특히 니나의 마지막 길을 잘 챙겨줘야 한다는 반려인으로서의 최후의 책임감 같은 것이 나를 죄어 짜고 있다. 아마도 내가 일 때문에 바쁠 때 한참 건강하고 발랄했던 니나에게 마음껏 산책을 못시켜준 죄책감이 마지막 책임감이라도 다 하라고 나를 종용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일을 시작했지만 나는 집순이처럼 집과 더 가까워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학교 일정은 재택에서 가능하게 되었고, 새롭게 시작한 일도 코로나로 인해 기대감 없이 뒤로 미루고 있다. 모든 상황이 마치 나의 상황에 맞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니나의 마지막을 일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생명은 한 순간에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하루 명을 다 할 때까지 가늘고 길게 이어갈 수 도 있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죽음은 고통 없이 한 순간에 가는 것이지만, 니나도 그렇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죽음은 언젠가 닥칠 일이지만 죽음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일년전부터 나는 쓸때없이 슬픔의 감정을 끌고 와서 감정을 허비하고 살았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음’의 행복을 잊은 채 나는 ‘없음’을 가정하고 기정사실화 한 채로 상상 속에서 니나의 무덤을 계속 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부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슬픔의 골을 끝없이 파기보다 같이 있음으로 인해 느끼는 기쁨을 왜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갑자기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이별은 두렵고 불안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별을 피할 수 없다면 그런 부정의 기운으로 니나와 마지막을 보낸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만 남기게 될게 뻔하다. 나는 왠지 긍정의 마음으로 니나를 보낸다면 니나의 다음 생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하루의 시간이 참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니 하루의 시간이 그리도 짧을 수가 없다. 지난 온 시간을 돌이켜보니하루는 짧고, 일주일은 더 짧고, 일 년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십년은 찰나로 느껴질 정도다. 17년의 시간 또한 순간처럼 다가온다. 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린 얼마나 많은 추억을 지니고 살았던지. 지나온 시간은 잠시 잊어야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니나에게 남겨진 시간에 집중하고 싶다. 비록 비내린 후의 상쾌한 5월의 아침을 내년에는 같이 못할지라도...
 
“너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편안함을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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