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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Oct 22. 2019

우울과 노을

노을은 내 우울증 치료제

요즘 내 주변을 맴도는 단어들은 우울, 몽상, 푸념, 짜증, 귀찮음, 수면, 고통, 피곤함 등이다. 하나같이 온통 부정적인 것들에 파묻혀 가을이 주는 우울한 계절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른다. 아마도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잘 안 풀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핑계를 굳이 대자면 나이 탓도 있겠다. 항상 꽃길만 걷고 싶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하던가!

엊그제는 일이 끝나 강북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한껏 침통한데도 일부러 더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나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때론 혼자 있을 때 감정의 몰입을 통해서 극한에 치달으면 이상하게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날도 그걸 바라고 볼륨을 크게 높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내 주변의 삶에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불행이라는 상상력의 옷을 입혀 비극의 주인공처럼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 철 모를 시절에 느끼는 외로움이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다. 그 감정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생활과 맞닿은 나에 대한 만족감을 더 이상 채울 수 없다는 실망감 내지 스스로 느끼는 상실감, 그리고 더 나아가 자괴감이 포함된 감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운전하는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낸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처절히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한남대교를 지나올 무렵 내 차 앞 유리창 밖으로 붉은 노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 시선은 자연스레 하늘에 머물렀고, 그러는 사이 아까 잠깐 동안의 나의 고립은 어느새 노을 속으로 서서히 무장해제되고 있었다. 노을 주변의 오렌지 빛은 새하얀 양털 구름과 섞이어서 뭉개 뭉개 퍼져 있었고 그 가운데 지는 해의 붉은 기운은 온갖 형용하기 힘든 세상의 모든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참 아름답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물론 나는 화려한 노을에 반했지만 잠시 후에 사라지게 될 노을이 처연하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노을을 쫒는 내 시선이 깊어갈수록 내가 만들었던 비극의 시나리오는 어느새 종적을 감추듯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노을이 고마웠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내가 지고 사는 작은 짐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짐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것이 힘겨워서 세상과 나 자신을 향해 투정 부리게 될 것이다. 삶은 늘 쳇바퀴와 같기에...

그래도 엊그제와 같은 멋진 노을을 적시적소에 또 만난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속에서 하얀 솜털 구름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와 함께 바람을 느낄 수 있다면, 작렬하는 가을 태양의 따가움을 고마움으로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내 삶의 무게는 좀 더 가벼워지리라.

나는 내일 이맘때 즈음이면 설악산의 단풍 속에서 절경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의 무게가 바람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일 것이라 기대해본다.

2019. 10. 12.(토)

“그처럼 무르익은 공기와 풍요로운 하늘 가운데서 사람들이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란 사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 까뮈의 『행복한 죽음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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