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과 함께 살기 제 2화
앞을 보지 못하는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한 살이 안 된 애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게 불안하고 분주할 때가 많다. 애들이 모두 나간 후 니나를 혼자 두고 외출하면 늘 마음이 신경 쓰이고, 행여 같이 있어도 늘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 앞이 잘 안 보여 여기저기 물건에 부딪히기도 하고 다리에 힘도 없어서 걷다 주저앉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니나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당연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가올 죽음에 대해 체념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안타까움이 늘 있다.
게다가 나는 늘 니나에게 죄인 같다. 산책을 많이 못 시켜 준 점, 좀 더 신경 써서 병원에 데리고 못가 준 점, 비싼 유기농 간식이나 좋은 영양제 등을 못 먹인 점, 애견 호텔이나 좋은 곳에 데리고 가지 못한 점, 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한 점 등등...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다.
요즘에는 신혼부부들이 아이들을 낳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육아에 필요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우는 시대는 지나간 걸까? 물질주의 사회에 돈이 많으면 아이를 더욱 풍요롭게 자라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반기를 들 부모는 없을 것이다. 물론 행복은 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런데 반려동물도 그렇다. 니나를 사랑으로 키우고 보듬어 주었다고 자부하지만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니나의 몇 차례 수술비도 부담이었지만 피부병으로 한 달에 들어가는 약값만 30만 원이 넘었던 적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증세가 호전된다고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했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고도 했다. 몇 년을 병원을 다니다가 치료비 부담과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에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핑계 같지만 나에게는 돌 봐야 할 애들이 둘이나 있었기에 니나에게만 전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애들은 이제 다 커서 나의 손이 필요하지 않은데 늙어가는 니나는 애기처럼 다시 나의 손에 의지해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때로는 이런 상황이 오래갈까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내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니나의 삶의 질을 걱정해서다. 나는 니나가 고통스럽게 삶을 버티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니나는 삶의 의지가 강해 다리가 아프면서도 잘 먹고 있다. 그런 니나를 볼 때는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오늘도 나는 버릇처럼 자고 있는 니나에게 다가가 숨소리를 확인하고 체온을 만져본다. 자다가 깨어 조용히 허공을 향해 초점 없이 바라보는 니나의 하얀 시선이 꼭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니나야, 아직은 괜찮은 거지? 17살이 되는 내년 2월 25일까지는 별일 없는 거지?’
(니나 어렸을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