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자 Oct 24. 2019

땅콩 볶기

땅콩 볶을 때 추억도 같이 볶아 주세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에 추석 때 받은 국산 땅콩을 냉동실에 보관했는데 냉장고 냄새가 배고 눅눅해졌다고 먹는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글쎄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던지, 프라이팬에 살짝 볶으면 되지 않을까?”

대답을 해준 후 친구의 반응을 보니 영 별로였다. 눈치를 보니 친구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냉동실에 보관된 땅콩이라도 나만 괜찮으면 주고 싶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었다.

“너 안 먹고 냉동고에 계속 보관하느니 나를 줘라. 내가 볶아 먹든 강정을 해서 먹든 알아서 먹을게.”

땅콩 탓에 요즘에 주로 먹었던 견과류를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몬드나 해바라기 씨, 그리고 브라질 넛 등 주로 홈쇼핑에서 대량 주문해서 세트로 구성된 수입산 견과류가 대부분이었다. 땅콩을 식탁 위에 두고 간식으로 먹은 기억이 최근에 별로 없는 걸 보니 땅콩이 너무 흔해서인지 아니면 흔한 견과류에 비해 너무 비싸서인지 그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나에게 땅콩은 대학교 시절 촌스럽게도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키면 꼭 버릇처럼 같이 시켰던 ‘오징어 땅콩’ 안주에서 부족한 오징어를 채우기 위한 곁다리 안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흔하고 어디서든 먹을 수 있었던 국산 땅콩이 이제는 비싼 몸값이 되어 식탁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나도 모르게 비싼 국산 땅콩을 먹기보다 수입산 견과류를 먹기 시작하면서 땅콩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쉽게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땅콩을 떠올리면 땅콩에 대한 추억도 같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시골 관사로 이사한 우리 집은 군 관사 앞 땅에 밭을 일구어 우리가 먹을 양만큼의 토마토, 고추, 호박 등을 심었었다. 하루는 내가 보지 못한 작은 초록의 잎사귀들이 땅 위로 솟아 올라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저건 무슨 풀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엄마는 땅콩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신기해서 그 풀에서 땅콩이 열리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땅콩은 다른 오이나 토마토처럼 눈에 띄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땅콩이 다른 채소들처럼 밖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땅 속에서 자라는 거라고 하셨고 때가 되면 볼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그리곤 때가 되어 땅콩을 수확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엄마가 알려준 데로 땅콩 줄기를 잡고 힘껏 뽑아 당겼다. 그러자 땅 속에 숨어있었던 하얀 땅콩들이 더 이상 내 힘에 버티지를 못하고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로 땅 위로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힘껏 뽑으면 딸려 나오는 땅콩들이 신기해서 나는 계속 땅콩 줄기를 잡아당겼다.

문제는 호기심이었다. 나는 땅콩이 가진 고소한 맛을 알고 있었던 터라 땅 속에서 바로 뽑은 땅콩도 고소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줄 알았다. 나는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땅콩을 뜯어서 맛을 보기 시작했다. 땅콩 맛은 고소함은커녕 익히지 않은 콩나물 대가리 맛 그 자체로 비릿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땅콩, 저 땅콩을 뜯어서 하나 맛보고 버리고, 또 맛보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엄마는 많이 먹으면 배탈 나니까 그만 먹으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호기심 많고 장난기가 가득했던 어린아이의 귀에 그런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에 탈이 나고 말았다. 그다음 날까지 나는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땅콩이 주는 교훈을 쓰라리게 배우게 되었다.

‘생땅콩은 생밤과 다르다. 땅콩은 꼭 익혀서 먹어야 한다.’
 
친구를 만났고 드디어 냉동실에 오래 있었다는 땅콩을 집으로 가져왔다. 프라이팬을 꺼내 불을 약하게 한 채로 달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프라이팬이 뜨거워졌다고 느꼈을 때 땅콩을 쏟아부었다. 나는 수저로 땅콩 하나하나를 뒤적여가며 볶기 시작했다. 땅콩을 볶으면서 순진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친구들과 어울려 호프 집을 오갔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맛보았던 땅콩 맛은 비릿했지만 포근했던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또한 나의 찬란했고 열정이 과했던 20대 시절, 술잔과 함께 맛보았던 땅콩의 고소한 맛은 그야말로 청춘을 떠올리는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땅콩을 볶으면서 나의 추억을 볶고 있는 것이구나.

그런데, 아뿔싸!
추억에 잠시 빠진 사이 나의 손놀림이 둔해지는 바람에 땅콩 한쪽 면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러면 어떤가. 껍질이 까매진 들 추억과 함께 볶은 땅콩이 어찌 고소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