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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반응하는 자세 Both sides now

영화 <코다>

by 싱긋


새벽 3시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온 가족을 깨우고 함께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덕분에 학교에서는 매일 졸고

비린내가 난다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노래는 자신의 전부이지만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그 노래를 들려줄 수 없다.



영화 코다의 주인공

고등학생 루비의 이야기다.



CODA (Childrens of Deaf Adult),

코다는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를 뜻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자녀를 통칭하는 용어가

따로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농인가족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널리

공유되길 바라는 마음들이

지어준 이름인 것 같아

코다의 뜻을 꼭꼭 눌러 기억해둔다.



사실 이 영화를 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고,

지인이 귀띔해 주고,

넷플릭스도 눈에 띄는 상단에 걸어주었다.



그런데 보지 않았던 이유는 포스터다.

소녀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사랑한다는 수어 동작을 보이고 있는 장면.



라라랜드 음악 감독의 작품이라는

홍보 문구도 묻을 만큼

조금의 호기심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청춘영화겠거니

보지도 않고 마침표를 찍게 만든

단조로운 포스터가 안타깝다.

다른 포스터를 메인으로 썼다면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즐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결국 영화 코다

도서관 수업에서 만나게 됐다.

운명 같다.



코다를 보고 나니 물음표 하나가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다.



"나는 내 한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농인들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들이 장애인으로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뚜렷하게 드러내는 인격체로 보였다.



루비의 가족들은 장애를 크게 부끄러워하지도,

불만 삼지도 않는 것 같다.

모두 당당하고 개성이 넘친다.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 약점을 통해 오히려 서로를 돕고 의지한다.

아픈 속내나 비밀스러운 일상까지도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장애는 이 가족을 끈끈한 공동체로 묶는

사랑의 끈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계에 부닥쳐

회피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대응했나.

여기 까지라며 지레 겁먹고 주저앉지 않았나.



그랬다.

나는 오래 망설이고 매우 느리게 결정한다.

누군가에게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도움도 구하지 않는다.

혼자 끙끙 대다 타이밍을 놓치고

한계선을 넘지 못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나와 루비가 절로 비교된다.




루비는 합창단 첫 연습에서

두려움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도망친 후 다시 선생님을 찾아간다.

계속 노래하고 싶다고 말이다.


짝사랑하는 마일스와 갈등을 겪지만

아지트인 호숫가로 그를 불러내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는다.


가족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음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열망을

부모님께 분명히 알리며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루비는 자신의 선을 넘을 줄 알았고

그렇게 성장한다.

자신을 내보이자 그 진심을 따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진심이 연결되어

단단한 관계가 형성됐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인생을 바꿀만한 크고 작은

도움과 기회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루비는 가족이라는 안전지대를 넘어

날개를 달고 원하는 세계로 날아간다.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한계를

나는 늘 선으로 인식했다.

금 하나를 두고 살거나 죽고,

소유와 상실로 나뉘고,

성공과 실패가 판명되는

칼날 같은 선 말이다.



영화 코다는 그 선이

두꺼워지고 넓어져 넉넉한 3차원의 공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너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부대낄 수 있는 시간을 허용했다.



그것은 곧 사랑이라는 관계의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각자의 영역이 확장됐다.



루비는 음대에 진학하고

가족들은 동료들과 조합을 이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루비가 변하자 가족이 바뀌고

마을 하나가 달라진 것이다.



"인간 현존의 최대 행복은 장애의 극복이다."

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루비 가족의 최대 행복이 이 영화에 담겼다.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한계의 정의를 새롭게 써야 한다.



루비는 한계를 도약의 디딤돌로 삼았다.

돌파하려면, 한계 선이 아닌

한계 면을 넘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힘은 눈빛과 표정으로든,

수어로든, 말로든, 글로든 다양한 채널로

내가 가진 양면 모두를 안전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때 혼자가 아닌 우리에게서 피어오른다.


나와 너의 못남을 편하게 내보이고

수용하며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길.

각자가 그 공간을 담아낼 그릇으로

조금 더 크고 빈틈없이 빚어지길.




코다를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을 향유하길 바란다.




p.s.

음악 영화인만큼 영화는

아름다운 곡조로 가득합니다.


그 중 루비가 버클리 음악대학의

오디션 곡으로 부른 "Both sides now"를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조니 미첼의 곡을 루비의 목소리로 즐겨보세요.

가사마저도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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