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따로 또 같이 쓰는 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이해가 열리는 찰나"이다.
처음엔 그저 내가
책과 강연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왜지?
더 오래 마음을 들여다봤다.
세상과 나를 배우는 게 좋다.
무언가를 배우고 '아하~' 하며 깨우칠 때
미약하나마 나를 깨뜨리는 쾌감이 있다.
그렇게 이전의 나와 멀어지는 거리감이 좋다.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책과 강연에서 배웠던 원리들이 실제로 세상에서 작동하며 부지런히 우리를 운용하고 있다는 발견은 놀랍기만 하다.
SNS를 계속 확인하게 되는 것이 의지 문제가 아니라 도파민으로 인한 뇌의 보상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알림을 끄니 실제로 사용 시간이 줄었던 경험.
심리학의 투사 개념을 배우고 나니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깨달음.
이런 순간들이 주는 희열을 사랑한다.
이해가 열리는 건 곧 나와 세계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구석진 내면, 흐릿한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다음에 쉽게 알아보게 된다. 타인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전보다는 시선의 깊이와 넓이를 키운 것 같으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책을 즐기며, 바람을 느끼는 많은 시간을 감사로 음미하며 포착하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시간들 속에서 내 표정은 무덤덤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그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동안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사랑의 활력은 얼굴빛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기쁨과 감사가 안개처럼 아른하기만 했다.
보물찾기 하듯 그러쥔 행복들을
일상이라는 흔한 단어를 붙여
구석에만 모셔둔 탓이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은 '이해가 열리는 찰나'뿐 아니라, 깨달음이 스민 후의 '많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의 순간은 찬란하지만, 그것을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환해진 세계를 무표정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랑의 활력으로 얼굴빛을 바꾸며 적극적으로 누려보려 한다.
깨우침의 순간이 곧 나의 활력이 되도록,
가족의 얼굴 앞에서,
책장을 넘기고,
바람을 맞으며 걷는 모든 순간들을
일상이라 제쳐두지 않고 인사하려 한다.
빛을 쬐어주려 한다.
그 빛 속에서 따뜻해진 온기를 느껴보려 한다.
이해를 얻은 뒤
그 깨달음을 느끼는 시간이 중요했다.
아는 것을 살아보는 일에
더 마음을 써야 했다.
보물은 내 손안에 있었으니까.
묵혀만 두고 껴보지 못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제는 당당히 꺼내 손가락에 직접 껴볼 차례다.
살아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