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따로 또 같이 문장>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
10월 14일 화요일, 낯선 메일 한 통이 네이트에 수신되어 있었다. 주로 네이버 메일을 사용하고, 네이트는 2차 인증용이나 물건 주문 확인 용도로 아주 가끔 접속할 뿐이었다.
'[국립국어원] 2025년 한국어 교원 활동 조사(조사 참여 독려)' 란 제목을 가진 메일이었다. 이런 메일이 매해 도착했었던가? 왜 처음 받아보는 것 같지? 안 그래도 9월 중순쯤에 한 번 메일이 왔었는데 이게 왜 나에게까지 왔을까 싶어 삭제해 버렸다. '조사 참여 독려'란 문구가 눈에 거슬렸다. '읽지 않은 메일' 폴더에서 여전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또다시 '삭제'버튼을 누르고 말았겠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메일의 요지는 이랬다.
'설문 조사 좀 할 테니 알아서 답 좀 해 다오.'
새로운 정책을 수립한다는 둥 뭐 그런 식상한 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변함없이 나답게 설문 조사 종료일 새벽에 문항을 확인했다.
'몇 급 자격증 있니? 해당 사항에 모두 표시하렴!'
'상위 자격은 언제 취득했니?'
'지금 활동하고 있니?'
'활동 안 한다고? 그럼 마지막 활동은 언제였니?'
'어디에서 했는데?'
'앞으로 할 생각 있니?'
'불편 사항, 개선 사항 표시해 봐. 기타에 써도 돼.'
'뭐 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
뭐 이런 지극히 평범한 문항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항에 답을 체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 간절했던 거 기억하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세상과 이별한 지 한참 좀 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사실 이건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엔 뭣도 모르고 덤비는 패기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쩌다 보니 비슷한 듯 다른 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행운도 아주 가끔은 주어졌다. 원어민과 협력 수업을 하며 나의 영어 실력은 정말 하찮았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진정 원했던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이었지만, 초등학교 담임으로서의 삶도 행복했고 보람 있었다. 아이들과 정을 나누며, 때로는 함께 웃고 울며, 일 년 후 몰라보게 성장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참 많이도 배우며.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흐른 뒤 마주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의젓해지던지, 신체의 성장은 얼마나 왕성하던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유쾌한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학교나 선생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나에게 되돌아왔던 건 충고나 조언이었다.
'정신 차려!'
'선생님 말 잘 들어!'
힘들었지만 참아야 했고, 참다 보니 적응해 가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되짚어 보니 당시의 불만들은 죄다 인내심과 성실함에 관한 것이었다. 어우러져 살아가려면 모두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었다.
뿜어낼 열정도 기운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무언가를 해 보려 했을 때, 습관을 단디 잡아주고 싶었을 때, 아니 정말 기본적인 교육을 했을 뿐인데, 돌아왔던 건 생각지도 못했던 원성이었다. 그 원성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나는 어느새 무기력한 교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필요한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데, 아이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한참 유행이었다.
11년에서 15년 차 사이, 최고로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능력으로는 초등 교사라는 삶이 버거움을. 하루라도 젊었을 때, 뭔가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파 놓아야 함을. 그리고 우연히 한국어 교사라는 세계로 빠져들었다.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했던 로망을 버리지 못했던 나에게 한국어교육은 무척이나 빛나 보였다. 신천지를 만난 듯했다.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한국어는 영어교육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며 하루하루를 신나게 살았다. 초등이라는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작한 공부였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의 국어 교육에도 무척 도움이 되었다. 국어 문법을 외국어 교육 형태로 제시하니 아이들도 흥미로워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조금은 활기차졌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래이래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너희가 한국어 무시하면 안 된다고, 세종대왕님이 하늘나라에서 노하신다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 몇 장의 사진이 아이들에게도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본업과 병행해야 하는 한국어 세계는 무척이나 버거웠다. 그 세계도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본업에 충실해졌다. 그리고 7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그 세계에서 멀어져 있었다.
설문 문항 하나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네주고 있었다.
'잊지 않았지?'
'이제 돌아올 시간이 된 거 아닐까?'
'기회를 찾아볼까?'
7년 전 그 세계도 포화에 포화 상태란 걸 깨달았기에, 이 나이에 환영받을 곳은 거의 없다는 걸 알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무기력한 그래서 나사가 백 개쯤은 빠져 있는 내가 이제는 진정 내가 원했던 길로 한걸음 옮겨 볼 수 있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
24년간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든다는 것, 매우 두렵고 또 두렵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 보겠는가! 한 번뿐인 인생, 항상 마음속에만 담아 놓고 있었던 그 꿈과 가장 가까운 그 길로 한 걸음 내디딜 나를 응원해 본다.
'한국어 교육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마지막 문항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구십 구 점 구구 프로였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한 학년에 두 세명뿐이었던 다문화 학생은 이제 어느 학급이든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들의 부모 중 한 명은 오십 프로의 비율로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임은 분명하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메일 한 통, 나에게 던져진 수많은 질문들, 덕분에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소심한 바람도 담아 보았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궁금함이 가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