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장 기억에 남을 일
<따로 또 같이 문장>
한 달이나 지나버린 2025년 하반기
두 달이 남아있는 2025년
금요일 1교시, 우리 반의 도서실 이용 시간이다. 국어 시간으로 배정되어 있고, 웬만하면 도서실에서 독서의 시간을 갖는다. 교실이 위치한 본관과 도서실이 있는 건물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쉬는 시간에 잠깐 들를 생각은 접어야 한다. 일찍 등교하거나 점심시간이 아니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학생 수는 500명 남짓일 뿐이지만 학교 건물은 이전 규모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본관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에는 특별실이 배치되어 있고, 도서관 역시 본관에선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요즘 아이들은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달려간다. 책을 마주할 시간이 참으로 부족하다.
도서실 이용 시간엔 나 역시 진득하게 독서를 해 보고 싶다.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10분 정도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책 내용을 친구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항상 있다. 그도 책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러려니 할 터인데 이야기는 산으로 흘러가 버리기 일쑤다. 책을 고르는데 온 시간을 써 버리거나 5분마다 책을 바꿔 주는 친구들도 늘 정해져 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힘겨움을 표현한다. 나는 도서실 이용 방법에 대해, 수업 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시간을 위해 항상 책을 챙겨간다. 단 5분이라도, 한 페이지라도 눈을 고정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모이고 모여 얼마나 귀하고 값져지는지 알고 있기에.
웬일인지 사서 선생님이 내가 들고 간 책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신간이라고, 요즘 출판사 서평단에 지원해서 독후감을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말씀드렸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이 세상에 갓 나온 책에 관심이 있는 거란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책 내신 거 없어요?"
허걱 나는 사서 선생님께 글을 쓴다고 말을 꺼낸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추측을 해 내신 걸까 궁금해졌다.
"책을 낼 자신은 없고, 지금은 독후감 쓰는 게 너무 좋네요."
"책 내신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교사용 도서 구입할 때 몇 권 사 놓을게요."
허걱, 어디서 무슨 말씀을 들으셨던 걸까?
"공저 하나를 내긴 했는데, 도서실에 비치해 달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네요. 나중에 학교를 떠날 때 제가 몇 권 기증할게요."
지난봄, 공저에 참여한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열한 편의 이야기 중 한 편의 이야기를 썼을 뿐이고, 그도 원고지 40매 분량이었다. 지금은 이래 쉽게 말하지만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공저 책이 나온 후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나온 책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공저가 나올 무렵 나는 겸직 신청서를 냈다. 공직 사회는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조직임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단 1원이라도 월급 외에 수입이 생길 경우엔 겸직을 신청해야 한다는 참으로 답답한 지침을 한동안 식전 기도문처럼 귓가에 외워들 주셨으니. 당시에는 몰랐다.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또 시작이군!'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렸을 뿐이었다. 항상 그렇다. 한 군데서 터진 문제는 늘 아무 상관없는 피라미에게까지 여파가 미친다. 그리고 무한한 죄책감을 심어 놓는다. 나는 책잡힐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공저는 인세가 거의 제로라는 걸 알고 있지만 겸직 허가를 위해 상사에게 보고를 진행했다. 그 과정이 상당히, 꽤 귀찮았다. 상사도 인지하지 못하는 지침, 처음엔 아무 상관없을 텐데 뭐 하러 그걸 말했냐는 식이었다. '당신이 1원이라도 수입이 발생하면 신고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말이 입술 앞까지 나왔지만 잘 막아냈다. 나중에 연락이 왔다. 신고하는 게 맞다고. 계약서 첨부하고 신청서 작성하라고. 그 과정에서 '겸직 허가 위원' 교사들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아마도 사서 선생님께까지 이야기가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당시 나는 상사에게 당부했다. 공저 이야기는 되도록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다행히 요즘은 소문이 퍼지진 않는다. 남 일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개인 정보 보호가 워낙에 중요시되고 있다 보니 서로가 상당히 조심하는 편이다.
여럿이 참여했고, 책의 홍보도 공저 과정의 일부였기에 SNS에도 한두 차례 글을 올렸다. 나는 친한 이웃들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책을 보냈고, 간단하게라도 독후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써 줬으면 했는데, 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해 주셔서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눈물 나게 고맙고 고마웠다. 그 와중에 블로그 글을 보고 공저책을 사준 분도 계셔서 너무 놀랐다. 성격상 내 책을 사달라고 말할 주제는 못 되고, 공저에 참여한 이상 홍보에 참여는 해야겠고, 부담감을 나의 방식대로 풀어냈다.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코 부끄럽진 않았다. 비록 40매의 원고였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기획 작가님과의 피드백 과정에서도 미련이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보고 또 보았고 출판사에서 OK 사인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끝까지 확인하고 확인했다. 어쩌면 그리 끝까지 고칠 게 나오던지, 책 한 권을 온전히 자신의 글로 채우는 분들은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건지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 책을 다시 들춰 본다면 또 다른 아쉬움이 남을지는 모르겠다.
사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잠시 잊고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굳이 책 제목을 알려 달라는 그 마음도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아마도 훗날 2025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떠올린다면 나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세상에 나온 일이겠지. 실명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일이 나는 참 어렵다.
그 모든 출발은 호기심이었다. 글을 써 보면 어떨까? 블로그에 내 글을 올리면 어떤 기분일까? 브런치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책을 내 보면 어떨까?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마음 깊숙한 곳에 이불로 담요로 덮고 또 덮어 놓은 일들을 끄집어낸다는 것, 생각보다 위로가 됐다.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었다. 글 속의 나는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내가 늠름하고 당당해 보였다. 글을 쓰다 보니 독서를 사랑하게 되었다. 책을 귀하게 여기는 이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늘 방황하고 있다. 글쓰기를 이어가겠다는, 단독 저서를 꼭 내고 싶다는 목표가 분명한 이들이 너무나 부럽다. 그냥 재미로, 그저 순간순간 기쁨으로 글을 쓰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목표가 없기에, 방향을 잃기에 방황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수시로 멈추어 댄다.
문득문득 브런치에도 내가 왜 글을 올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있는 내가 신기할 정도다. 이것저것 기회가 있으면, 생각이 나면, 글을 쓰고 싶지만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글쓰기를 놓지 않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숙제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도 많았다. 아마도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내가 쌓아놓은 글을 바라볼 때, 그때는 과연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따로 또 같이> 매거진이 없었다면 지금 쌓여있는 열일곱 편의 글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멈추지 않게 나를 붙들어 주고 있는 매거진에게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다.
"책은 감히 못 내겠어요. 하지만 글은 계속 써 보려고요. 지금은 독후감 쓰기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저는 시를 쓰고 싶어요."
"우와, 시는 정말 넘사벽인데, 나중에 이 학교 뜰 때 전화번호 교환해요. 선생님하고 계속 연락하고 싶어요."
"그래요. 우리 친구 해요."
사서 선생님과 글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동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지, 책과 씨름하며 얼마나 행복하실지! 사실 요즘 최고로 부러운 직업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고 하신다. 독서 행사도, 작가와의 만남 추진도, 서고 정리도 매우 힘겹다고 하신다. 세상에 쉬운 일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 두 달이 남아있는 2025년, 이맘때면 슬슬 아쉬움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올해는 남다르다. 2025학년도를 정말, 아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교직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멋지게, 아니 솔직한 심정으론 정말 별 탈 없이 잘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나의 아이들의 졸업식 날에 나도 아주 밝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서 선생님과의 잠깐의 대화 중, 나의 아이들도 수다가 깊어졌다. 웃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여기는 도서실이라고, 너희는 6학년인 거 잊지 말라고, 지금 이 시간, 책의 세계에 빠져 보라고, 오늘만큼은 유난히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를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