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마음의 청소에도 부지런한 내가 되길

by 글꽃향기


<따로 또 같이 문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넌 집에 들어앉아서 뭐 하냐?"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던 나의 안부 인사에 무뚝뚝하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었다. 정말 뭘 하는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란 걸 정 아무개 씨의 딸로 살면서 터득해 냈기에 나는 동문서답한다.

"가서 뭐 할까요? 청소할까요?"

평소 20프로 정도 높임말을 사용하지만 당분간은 100프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토라진 엄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테니.

"와서 청소 좀 해! 추석 날 가족들이 모일 텐데 집이 너무 지저분해!"

특별한 날을 위한 청소 정도쯤은 거뜬히 해내던 엄마였지만 이제는 무리가 된 지 좀 됐다. 안 그래도 미리 가서 한바탕 정리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요즘 딴 데 정신이 팔려서 미루고 미뤘었다. 아니 어쩌면 되도록 추석 전날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후에 갈게요. 청소는 하지 마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집을 대충 치워 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서 15분 거리다. 그도 참 움직이기가 힘들다. 사실 5분 컷 거리였을 때도 자주 가지는 않았다. 엄마가 뭘 가져가라고 해야 겨우겨우 들렀다. 집순이는 집을 벗어나기가 참 힘들다. 엄마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보이고, 또 한참 동안 엄마의 수다를 들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훌쩍 서너 시간은 지나 있고, 집에 오면 또 할 일이 쌓여 있고, 뭐 그렇다. 요일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들르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렵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다녀왔습니다! 어디부터 할까요?"

"화장실! 안방 화장실은 내가 했고, 거실 화장실 청소부터!"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봉사 모드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청소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중에서도 화장실 청소는 하루라도 미루는 편이다. 막혀 있는 공간에서, 습기를 가득 품고, 세제향을 온전히 맡아야 하는 그 시간은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다. 곰팡이란 녀석이 가끔이라도 찾아와 줄 때면 더욱 힘들어진다. 어라, 화장실이 깨끗하다. 어떻게 된 거지? 청소를 끝내고 물기가 말라있는 느낌이다. 엥? 뭐지?

"엄마, 화장실 청소하셨어요?"

"......"

잘못 봤나 해서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엥? 깨끗하다.

"엄마, 화장실 깨끗한데요!"

"내가 아침에 했다! 어찌나 힘들던지 화장실 청소하고 한숨 돌리던 차에 니가 전화했더라!"




대가족 맞이 음식 하시랴, 청소하시랴,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맞이하는 엄마 입장에선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부담스러운 시기임엔 틀림없다. 이럴 땐 막둥이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데, 이번에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화장실 청소가 킹 오브 킹 아니던가! 어라? 그러고 보니 화장실 청소부터 하라는 엄마의 주문은 무슨 의미였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제일 힘든 건 해 놨다. 나머지 부탁한다.' 의미였을까? 아니면 '좀 일찍 오지!' 서운함의 의미였을까? 그도 아니면 나를 놀리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지금 내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순서를 정해 본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열기

걸레 빨아 먼지 털어내기

청소기 돌리기

방바닥 닦기




청소하면 또 나 아니던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여기저기 몸은 쑤실지라도 조금씩 깨끗해지는 마법을 직관하는 기쁨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거실 곳곳에 꾸며진 엄마의 작은 정원에 남겨진 흙먼지를 닦아내 본다. 결혼 이후엔 손대 본 적 없는 피아노의 묵은 때를 조금이라도 지워 본다. 엄마는 왜 아직도 이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두 번의 이사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둘째 언니가 딸내미 음악 공부 좀 시키겠다고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을 때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피아노는 엄마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진다. 엄마의 책상 위에 펼쳐진 공책을 접어 놓는다. 아직도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그래야 영어 공부가 된다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글로만 흔적을 남길 뿐이다. 그러고 보니 필사 좋아하는 나, 아무래도 엄마의 유전자를 닮았나 보다. 주방 테이블 아래엔 정체 모를 뭔가가 우수수 떨어져 있다. 처음엔 엄마가 왜 이리 뭔가를 흘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슬프게도 얼마 전부터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를 그렇게 떨어뜨리고 있더라는. 엄마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잘 못 보시는 듯하다. 아니면 안 보고 싶은 걸까?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확인한다. 털어내고, 지워 보고, 닦아낸다. 낡은 물건을 보며, 이제는 대청소를 버거워하는 엄마를 보며 서글퍼진다. 청소를 끝내고 나는 대자로 뻗었다. 아니, 사실 중간에도 잠깐 쉬어 줬다. 이제는 나도 한 번에 청소를 끝낼 수 없구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니까 그러려니 해야겠지.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나는 직업을 잘못 택한 것 같아!"

"뭐?"

"나는 청소를 했어야 했어. 청소를! 청소를 끝내고 나면 그렇게 좋다니까!"

"남 하는 일은 다 쉬운 줄 알지! 철딱서니 없기는!"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꼭 한소리 듣는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청소를 마치고 깨끗해진 공간을 바라보는 순간!




그 바쁜 아침 시간에도 나는 틈틈이 정리한다. 돌돌이 침구 정리는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다. 방문마다 달아놓은 패브릭 포스터도 가지런히 펼쳐 놓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깨끗한 집이 나를 맞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실 청소도 빼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책상과 의자를 정리한다. 긴 빗자루로 곳곳을 쓸어낸다. 다음 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올 나와 아이들을 위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복잡한 이 마음도 몇 시간 만에 아주 깔끔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니 마음의 청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묵은 먼지를 조금씩 닦아내야겠다. 흔적이 희미해지도록. 정체 모를 부스러기들을 쓸어내야겠다. 쌓이고 쌓여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나의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깨끗한 공간을 위해 시간과 땀방울을 준비하듯 나의 마음에도 정성을 들여야겠다. 공간의 청소에도, 마음의 청소에도 부지런한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수고했다. 저녁 먹자!"

"오늘은 밥값 했으니 잘 먹겠습니다!"




대가족의 밥상에 올라갈 음식을 미리 맛보는 특권을 가졌다. 적당하네, 맛있네, 뭐 넣네, 이건 아쉽네,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리에 자신감이 대단한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행복한 표정이다. 요리의 대가와 청소를 애정하는 이의 식사가 작은 식탁 위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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