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같아요'라는 종결어를 즐겨 쓸까? '같아요'는 면책의 종결어
'같아요' 유감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늙어가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그다지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긴 했는데 왜 그 장면이 들어갔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수업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매운 것 같아요. 맛있는 것 같아요. 달콤한 것 같아요. 뜨거운 것 같아요.
지루한 것 같아요. 인상적인 것 같아요. 촌스러운 것 같아요.
‘같아요’를 남발하는 사회다. 학생들 글 종결어미의 대부분(?)이 ‘같아요.’의 남발이다. 물론 나도 무언가 명확하지 않을 때 ‘같아요’를 자주 사용한다.
'하늘이 흐려지니 비가 올 것 같아요. 눈이 올 것 같아요.'
기상과 관련된 것은 우리 의지로 알 수 없는 것이니 ‘같아요’로 표현하는 게 적합할 수 있지만 이미 읽은 소설, 이미 본 영화, 이미 먹어 본 음식에 우리는 왜 자꾸 ‘같아요’를 붙이고 싶어 할까?
어딘가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 시간상으로 볼 때 분명한데도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참석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문자를 보낸다. 참석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같아요'에 담는 것이다.
이미 읽은 책이나 영화에 대한 자신의 평가 말미에 ‘같아요.’를 붙이는 것은 어딘지 다른 이들은 자신과 반대적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할 때도 상대가 민망할까 봐
‘전체적으로 좋으나 이 부분은 조금 어색한 것 같아요. 조금 추상적인 것 같아요.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아요.....’ 수많은 ‘같아요’를 붙여서 평가한다. ‘같아요’ 뒤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는 ‘같아요’의 남발이다.
음식 맛에 대해서도 ‘매운 것 같아요. 짠 것 같아요.’도 사람의 입맛, 선호도에 따라 다르니 ‘같아요’를 쓰는 것이리라.
바로 앞의 상대건 익명의 상대건 상대를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같아요’는 적당한 표현법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같아요’라고 말하는 자신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어딘지 무언가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려는 마음이 보이기도 하고 자신(확신)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성에 대한 치유적 장치를 갖고 있다.’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 ~ 치유적 장치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설령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실은 알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앎’의 한계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같아요.’는 우리에게 적당한 면책의 종결어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같아요'는 '같아요'를 증폭시키는 장치처럼 보인다.
창밖에 눈부신 1월의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럼에도 오늘 기상청 뉴스에는 태풍급 눈보라가 몰려올 것이라 한다. 이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오늘은 어쩐지 눈보라가 칠 것 같아요."라고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현재는 맑고 푸르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