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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들과 너무 부족한 것들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것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 너무 많은 것들 >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그러나 너무 부족한 공간

너무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흡연

너무 많은 복종


너무 많은 불룩한 배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그러나 너무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 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그러나 너무 부족한 명상


너무 많은 분노

너무 많은 설탕

너무 많은 방사능

너무 적게 내리는 눈

앨렌 긴즈버그 < 너무 많은 것들 > 일부


이 시의 원제는 < 루르 게비트 >인데 독일의 탄전 공업 지대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지역이 명칭이라 한다. 현재는 예술촌으로 바뀌었다. 앨렌 긴즈버그는 물질적 풍요가 자유와 행복이라는 환상을 낳는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 ‘많음’의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그는 ‘일차원적’ 인간이라 칭했다.

‘결핍’이 꼭 빈곤의 상징이 아닌 것처럼 ‘많음’이 부의 상징은 아니다.

너무 많은 것들. 물적인 욕망에 빠지면 누구나 물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들이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두려움과 불안, 걱정, 불확실성, 허무, 상실, 분노. 갈망, 허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은 너무 많은 추상적인 것들도 존재한다.

물적인 것들이 충족되어 있어도 너무 많은 허기에 노출되고 너무 많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살아간다. 만일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물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훨씬 더 많은 허기와 불확실성과 고통과 두려움에 빠져들 것이다.

앨렌 긴즈버그의 시에서 너무 부족한 것들의 목록에는 너무 부족한 나무, 너무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 부족한 잣나무, 너무 부족한 명상, 너무 적게 내리는 눈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너무 부족한 것들의 목록도 너무 많은 것들의 목록만큼이나 길다. 너무 많이 부족한 공감, 배려, 이해, 나눔, 용서, 사유, 고요, 침묵, 열정....그 부족한 것들을 헤아리자니 하루를 주어도 부족할 듯 싶다.


너무 많은 것들과 너무 부족한 것들의 경계는 모호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부족한 것들을 양산하고 너무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양산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것들, 너무 부족한 것들, 그 사이의 것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족하지도 많지도 않은 것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들, 알 수 없는 것들..... 수많은 그것들이 모여 너무나 많거나 너무나 부족한 삶을 이루고 있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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