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정호승-
법정스님은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에 가불해와서 걱정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불가에서는 “ 내일은 없다. 미래는 없다.”한다 그래서 “내일은 바로 오늘에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라”라고 한다.
내 시적 상상력 속에 존재하시는 부처님께서 나를 불렀다
“ 호승이 너, 이리 좀 와봐라!”
나는 겁이 나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부처님 앞에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내 머리를 한 대 탁 치시면서 “이 바보 같은 놈아,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니?” 하고 내 머리를 한 대 더 때리면서 크게 야단을 치셨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P 19 인용
삶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관점의 차이에 따라 해결 방법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외출을 하려고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위에서 무언가가 차 유리로 떨어져 금이 갔다고 하면 어떤 이는 재수 없는 날이니 외출을 하지 않는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어쩐지 오늘 기분도 별로였는데 무언가가 떨어져 차 유리를 깬 것으로 액댐이 된 것 같다고 좋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경우다. 위에서 추락하는 물체를 내가 미리 알고 대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완벽하길 바란다. 설령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았고. 바라던 목표에서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결과를 얻는다 해도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만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에서처럼 나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산산조각 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아끼는 것이든 아끼지 않는 것이든 부서지고 깨지고 소멸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중국 여행길에서 사다 준 병마용갱 병사 장식품이 실수로 떨어져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버렸다. 순간접착제로 붙이니 간신히 붙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깨진 자국은 남아있다. 떨어져 깨진 것을 왜 모아두는지 모르겠다는 소릴 여러 번 듣지만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본디 내 성향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 난 삶을 살아보진 않았다. 그러하기에 산산조각 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갈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순간접착제로 산산 조각난 삶들을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고 부질없는 헛수고를 하고 있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파편이 된 거울로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 파편이 된 거울을 일일이 이어 붙인다 하여도 온전한 내가 거울에 비치는 것은 아니다. 파편의 모음일 뿐, 거울이 아니다. 그러나 거울의 파편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으로든 분명한 ‘나’다.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된 부처님이 산산조각 났다. 시인은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떨어진 산산조각을 붙이려 애쓴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불쌍한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늘 부서지지 않으려, 늘 무너지지 않으려, 늘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삶은 사실 좋은 삶의 모습은 아니다. 부서지지 않으려 발버둥 쳐도 부서질 것은 부서질 것이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써도 무너질 것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오늘 하루 온전히 살고 싶었으나 늘 밤 시간이 되어 하루의 파편들을 보면 아쉬움이 생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라 할 수 있겠다.
산산조각이 나도 괜찮다. 산산조각이 새로 생겨난 것이니까.....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