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반의 오브제가 만나 합을 만든다 /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우리에게 해석을 필요로 한다.
'외의 사물을 의외의 장소에 배치하는 것을 초현실주의에서 ‘데페이즈망'이라 부른다. 원뜻은 '추방하는 것'인데 특정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은 곳에 배치하는 것. 낯설게 하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자(언어)처럼 다가온다.
그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골콩드> 하늘에서 검은 중절모를 쓴 남자가 비처럼 내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골콩드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인도의 옛 도시로 쇠락했지만 여전히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중절모와 검은 롱코트가 당시에는 보편적인 패션이라 한다. 비슷비슷한 남자들이 크거나 작게, 혹은 진하게 연하게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익명성의 남자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평균인들의 모습이다. 규칙성을 지닌 남자들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도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
중절모를 쓴 남자가 겨울비가 되어 쏟아지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중 <헤겔의 휴일>은 커다란 검은 우산 위에 물이 담긴 투명 유리컵이 있는 그림이다.
< 헤겔의 휴일>에 대해 르네 마그리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의 최근 작품은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평범하지 않게 작품 안에서 어떻게 물컵을 보여줄까? 별나거나 임의적이거나 서투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외람되게 볼지도 모르지만 천재적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그릇된 겸손 없이 말입니다) 나는 컵 위에 줄을 그어 물컵을 여러 개 드로잉함으로써 시작하였습니다. 100번째 혹은 105번째 드로잉 후에 이 선이 확장되면서 결국은 우산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산은 컵 안에 담겼다가 결국 컵 아래로 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의문, 어떻게 물컵을 천재적으로 그릴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헤겔이 두 개의 대비되는 기능을 지닌 이 오브제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두 가지 기능이란 어떠한 물도 인정하지 않는 (물을 거부하는) 동시에 물을 인정하기도 (물을 담는)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헤겔이 (휴가를 맞은 것처럼) 매우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였을 것 같아서 이 작품을 <헤겔의 휴일>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물컵은 물을 담는 용도, 커다란 검은 우산은 비를 피할 때 쓰는 용도, 두 개의 오브제는 물과 관련이 있다. 우산은 물(비)이 스며들지 못하게 차단함과 동시에 물(비)이 우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허용한다. 물을 차단하면서 허용하는 우산. 물컵은 물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물에 어떤 고정된 형태를 지정한다.
투명 유리컵은 우산의 가장 높은 곳, 우산 꼭지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컵 안에 물(비)이 가두어져 있어서 헤겔의 휴일은 맑은 날일 것이다. 우산을 접으면 투명 유리컵 안의 물이 쏟아질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경우든 헤겔에게는 즐거운 유희가 아닐까.
*헤겔의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헤겔의 변증법은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이 제시한 추론 체계로서, 그는 우주의 중심에 모든 실체를 계도하는 절대정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론화시켰다. 헤겔에 의하면, 모든 역사 발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법칙에 따른다. 각 사건은 필연적인 과정에 따른다(다시 말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 수 없다), 각 역사적 사건은 변화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발전을 표현한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 혹은 위상(phase)은 그 반대의 위상에 의해 대체되는 경향이 있으며, 나중에는 양극단이 통합된(대립이 해결된) 위상에 의해 대체된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양극단의 위상은 '명제'와 '반명제'라 불린다. 그리고 양극단이 통합된 위상을 '종합'이라 불린다. 이 체계를 바탕으로 헤겔은 인간이 역사의 막힘없는 전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인간의 경험을 절대적이며 인식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물을 가둔 물컵을 위에 이고 있는 검은 우산. 물컵과 우산은 헤겔에게 ‘휴일’을 허하는 것일까? 아니면 헤겔은 철학적 사유를 위해서는 휴일마저도 반납한다는 의미일까?
<헤겔의 휴일>을 완성하기까지 의미를 적은 르네 마그리트의 기록에서 보듯 르네 마그리트는 어떤 오브제들(正과 反)의 낯선 결합을 통해 현실에서 새로운 합 (合)을 모색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