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피에르 쇠라/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 채색 점묘파 화가
Georges-Pierre Seurat(1859년 12월 2일 – 1891년 3월 29일)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광학적 이론과 이상적 미학의 기준에 부합되는 작품이다. 쇠라는 그림에 광학적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점과 짧은 막대를 그려 새로운 색의 효과를 만들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이 작품을 비평가들은 “ 생동하는 빛, 풍부한 색상, 달콤하며 시적인 조화”라 평했다고 한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는 파리 서쪽 외곽에 있는 그랑자트 섬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쇠라는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무명 화가였던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고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후대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는 강렬한 작품이기도 하다.
파리 외곽에 있는 그랑자트 섬은 아름다운 경치 때문인지 늘 사람들로 붐볐는데 불륜, 매춘, 밀회의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같은 그림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랑자트 섬이 어떤 섬인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에는 이상적인 곳, 몽환적 유토피아로 생각되었다.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이 연초록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서 물 위에 떠있는 요트를 보거나 풍경을 응시하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양산을 받쳐 든 귀부인들. 모자를 쓰고 우아한 표정으로 걷는 여인들, 뛰노는 아이들, 주인을 따라 산책 나온 개, 원숭이, 중절모를 쓰고 슈트를 잘 차려입은 신사, 반바지에 캡 모자를 쓴 남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나도 그들의 위치에서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림의 한 중앙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와 양산을 쓴 호리호리한 여인이 정면을 향한 채로 걷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일로 하루하루가 쫓기듯 살던 때... 일요일 오후에는 늘 쇠라의 <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꿈꾸곤 했다. 나무 그늘 아래 연초록 풀밭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랑자트 섬이 매춘과 불륜으로 유명한 섬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그림을 들여다보니 잘 차려입은 커플들은 밀회를 즐기는 커플처럼 보인다. 특히나 검은 우산을 쓰고 검은색 상의, 허리라인이 강조된 스커트를 입은 여인은 원숭이와 개를 데리고 있다. 그림에서 원숭이는 대개 방탕의 상징이라 하니 더더욱 평화로운 휴식의 섬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변가를 걷는 두 남자가 경찰이라는 전제로 보면 유원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순찰을 도는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 섬이 성매매로 유명한 곳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보면 불법성매매를 단속하기 위해 순찰을 도는 경찰로 보인다. 그 순간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가 은밀한 범죄(?)를 꿈꾸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표정도 알 수 없는 익명성의 얼굴. 눈 코 입도 부정확한 사람들. 웃고 있는지, 말을 하고 있는지, 침묵 중인지 알 수 없다.
같은 그림 속 동일한 인물들, 동일한 풍경도 어떤 단서에 집중하여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느낌으로 해석된다. 쇠라는 점묘법의 창시자다. 현대적 기법으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을 1800년대 조르주 쇠라는 미리 알고 있었을까? 아무리 그림 속 사람들이라 하여도 그들의 익명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그 당시에도 생각했던 것일까?
그랑자트 섬, 일요일 오후.... 바라보는 이의 관점이 어떠하건 일요일 오후의 풍경이라는 것과 그랑자트 섬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어떤 역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는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밀회든, 성매매든, 호객행위든, 휴식과 충전이든... 그것에 대한 도덕과 윤리의 잣대들 들이대며 작품을 감상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시의 그들도 ‘지금 그리고 현재’라는 시점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싶은 열망을 지닌 사람들이었을 테니까....
일요일이 지고 있다. 달력을 바라보면 태양의 날, 달의 날, 불의 날, 물의 날, 나무의 날, 금의 날, 흙의 날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태양의 날... 그랑자트 섬에는 태양의 날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84~1886년에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태양의 날에는 늘 떠오르는 그랑자트 섬의 풍경..../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