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이 내렸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달. 삼나무에 먼지바람 부는 달에
February(2 월)
고대 로마에서는 결실의 신인 루페르쿠스(lupercus)를 모시는 제전이 있었다. 이 제전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낸 산양의 피를 묻힌 가죽끈이 있었는데 이 가죽끈을 februa(부정을 막는 부적)라고 불렀다. 또 이 가죽을 만지면 아이를 못 낳는 부녀자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는 신통력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달이라고 해서 2월을 Februarius(부정 방지의 달)이라 했고, 여기에서 영어 February가 생겼다고 한다.
2월을 표현하는 인디언식 이름은 다양하다.
물고기가 뛰노는 달 , 너구리 달, 바람 부는 달, 홀로 걷는 달,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삼나무에 먼지바람 부는 달, 새순이 돋는 달 ,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 먹을 것이 없어 뼈를 갉작거리는 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달, 움이 트는 달, 햇빛에 서리 반짝이는 달, 오랫동안 메마른 달, 사람이 늙는 달, 더디게 가는 달, 가문비나무 끝 부러지는 달 , 나무들 헐벗고 풀들은 눈에 안 띄는 달, 토끼가 새끼 배는 달, 오솔길에 눈 없는 달. 검지 손가락 달, 비 내리고 춤추는 달, 나뭇가지들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달.
인디언들은 사람의 이름이나 달의 이름에 낭만적이면서 구체적 표현을 쓴 듯하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사고가 풍요로울까 생각한다. ‘삼나무에 먼지바람 부는 달’이라니... 황사와 미세먼지가 인디언 시대에도 존재했을 리 없을 텐데 먼지바람이 궁금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냥 먼지바람 부는 달이 아니라 '삼나무에 먼지바람이 분다'는 시적인 표현이다. 삼나무에 부는 먼지바람은 대지를 한바탕 휘돌아온 바람일 듯싶다.
오랫동안 메마른 달, 무엇이 메마른 것일까. 2월의 들판은 황량하다. 11월의 들판과 풍경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11월의 황량한 들판은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고 2월의 황량한 들판은 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점이 다르다.
2월은 변덕스럽다. 두껍게 차려입고 나서면 금방 봄이 온 듯하고 가볍게 입고 나서면 차가운 바람에 다시 겨울을 생각하게 한다. 2월의 바람결에는 매서운 겨울이 아직 묻어있지만 그 바람결 어딘가에서는 여린 새싹 내음이 풍긴다. 연초록 봄과 회색 겨울이 공존하는 달이 2월이다.
움이 트는 달이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어쩐지 3월이 시작의 계절처럼 여겨지는 것은 학창 시절의 오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학제가 3월에 시작된다. 새 학년, 새 학교, 새 출발은 늘 3월이었으니까.
2월은 1월이라는 한 해의 시작과 학기의 시작이라는 3월 사이에 존재한다. 2월에는 음력설이 끼어있기도 하다. (해마다 달라지지만) 다시 새해를 맞으며 잃어버린 초심을 다잡고 새 학기를 앞두고 또다시 시작을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정화하는 시간이라 하였던 로마인들의 마음이 되어본다.
봄의 플랫폼.... 차가움 속에 따스함이....
오늘 봄눈이 내렸다. 정호승의 시가 생각나는 날이다.
<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떨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의 시 『봄길』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