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사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현명한 독자로 살아가기

책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누군가는 불면의 밤을, 또 누군가는 고통과 희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커서가 깜박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붙잡으려 애썼을 누군가들... 제일 늦게 불이 꺼지고 제일 먼저 불이 켜졌을지도 모를 글 쓰는 이들의 창.

햇살을 받으며 서점에 누워있는 신간도서들을 바라보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만들지만... 출간된 책은 독자에 따라 여러 권의 책으로 거듭난다. 수천. 수만, 수십만 권의 책들...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 다른 책이 될 때가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평가는 저마다 다르듯.

책이 저자의 손을 떠나면 어쩌면 더 이상 저자 만의 책이 아니다.

서점으로 달려가 갓 구운 빵처럼 뜨끈뜨끈한 신간을 가슴에 품고 돌아와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일... 그 책 중 어떤 문장, 어떤 단어가 튀어나와 마음을 뒤흔들면 한참 동안 책 속으로 들어가는 일.

무언가를 메모하는 일..... 제대로 된 책,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들을 만나면 행복하다.

책은 사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무표정의 표정 속, 도발적인 것들이 숨어있다. 절제된 것들 속 나를 두드리는 무언가가 숨어있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들을, 때론 잃어버린 나를 책 속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책을 읽는 시간은 시간여행자의 시간이다.


하지만 모든 책들이 나를 그토록 들뜨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을 보면 그 자리에서 다시 덮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눈에 쏙 들어오는 표지에 끌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렇게 대충 책을 만들어도 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개인적인 판단일 수 있다. 그 어떤 책도 대충 나왔을 리는 없을 테니까.

때론 유명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을 묶어서 대충(?) 책으로 만든 책들도 있다. 저자의 글로 팔리기보다 저자의 이름으로 팔리는 책들이다. 작가가 어느 정도 유명해지만 그 혹은 그녀의 손이 아닌 '이름' 이 글을 쓰는 것 같다.

인터넷 서점이든 오프라인 서점이든 베스트를 차지하는 책들은 대부분 유명 작가의 책들이거나 최근 00상 수상작들이거나 아니면 튀는 아이템으로 승부한 책들이다. 책들은 자꾸만 태어난다. 가끔 내가 읽는 속도를 추월하는 책의 탄생 속도에 절망하기도 한다. 때론 즐겁고 황홀한 희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글을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현명한 독자 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 소개글이나 광고, 이벤트에 끌려 무턱대고 '좋아요'를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생각과는 별개로 소개되는 별점만으로 그 책을 평가해버리는 건 아닌지...... 가볍고 쉽게 읽을 책, 심지어 핸드백에 쏙 들어갈 사이즈의 책만을 선호하는 것이 출판의 흐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책도 유행을 탄다. 한때는 인문학 서적이, 한때는 심리학 , 또 한때는 여행 관련..... 혹은 치유나 위로... 재테크.

요즘은 너도나도 쉽게 책을 낸다. 이제는 우리가 쉽게 고르는 책 한 권이 어쩌면.... 출판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니 판매, 수익 창출을 늘 염두고 두고 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독자인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마케팅에 끌려 쉽게 집어든 책 한 권이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거나, 아주 공들여 만든 책일지라도 우리가 결코 집어 들지 않아서 곧바로 매장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독자들의 손이다. 저자의 손을 떠난 책들... 어떤 책은 볕 좋은 자리에 베스트, 신간, 화제의 책이란 타이틀을 두르고 누워있다. 또 어떤 책은 출생신고를 마침과 동시에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신간 코너에서 바로 밀려나 구석자리 어딘가에 묻혀버릴 수 있다. 존재 감 없이 사라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사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인 책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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