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장미가 피는 계절은 따로 없다. 꽃의 시간은 꽃이 정하는 것!

식물을 키우는 일에 서툴다. 봄날 꽃 시장에 가면 들뜬 마음으로 화분을 몇 개 사들고 돌아오지만 끝까지 잘 키워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화분을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딜 가든 '장미'를 보면 발길이 멈춘다. '장미'는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지난해 봄. 꽃시장에서 핑크빛 미니 장미 화분을 한 개 사 왔다. 가는 줄기에 아주 작은 장미가 여러 송이 피었다. 올 해는 꽃이 피지 않았다. 죽어가는 것일까. 분명 초록 잎들은 싱싱하게 붙어있지만 꽃이 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은 장미 화분은 거실에서 베란다 어딘가로 밀려났다.

11월의 주말 아침, 베란다의 장미 화분에 아주 작은 장미꽃 봉오리가 맺혀있는 것을 보았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의 일이었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의 시간이었다. 사람의 시간,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장미가 피어야 하는 계절은 따로 없었다.

꽃은 자신의 실존 의지로, 존재 증명 투쟁을 한 것일까. 거실 탁자 위에서 베란다 어딘가로 밀려난 장미 화분의 존재 증명 투쟁.... 투쟁의 끝은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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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쿤체의 시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라는 시가 있다.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라는 대목에 마음이 아리다. 눈길 닿지 않아도 꽃 피어야만 하는 것은 기어이 꽃 피는 것....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꽃을 위한 꽃의 시간이고 꽃의 춤이다. 11월에 핀 연분홍 작은 장미 한 송이는 나를 위해 피어난 것이 아니다. 꽃 피어야 하기에 꽃 핀 것이다. 뜨거운 분홍이 가는 몸 어딘가에서 끓어올라 봉오리로 응집된 몸부림 같은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고독과 방랑 그리고 장미 또는 모순의 시인이라 불린다. 1926년 12월 자신을 찾아온 여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려다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스위스 발몽에서 51세로 세상을 떠난다. 1927년 1월 2일 라롱에서 좀 떨어진 교회 언덕에 묻힌다. 그가 스스로 지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 고픈 마음이여'

장미의 시인... 릴케. 장미는 그의 말처럼 순수한 모순의 상징인지도 모르겠다. 한 송이 단독자로서의 장미.
여린 꽃잎들이 겹쳐있고 가시가 있는 가는 줄기. 진초록 잎사귀는 단아한 잎맥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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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으로서의 장미가 아닌 단독자로서의 장미를 보면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같은 화분에 섞여 피어도 그 하나하나의 표정이 다른 꽃.....


햇살의 결, 바람의 질감이 달라진 11월. 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에 피어난 장미 한 송이

아마도 어쩌면 딱 한 송이로 올해의 개화를 마무리할지 모른다. 그러함에도 그 한 송이 장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구의 것도 아닌 순수한 모순이기에.


사람이 정한 시기.' 이 시기에는 ~ 해야 한다.'는 당위가 부끄럽게 생각되는 날이다.

이런 당위들이 모여 자신을 구속하고 자신의 시간이 아닌 타인의 시간에 종속되게 만든다.

5월의 장미도 아닌 11월에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에게서 배운다.

저마다 한 송이 장미라면 꽃 피어야 하는 시기는 따로 없다는 사실을.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라는 진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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