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이 나무에 닿을 수 있을까
무뚝뚝한 직유로서 한 그루의 나무가 반짝인다
저 나무는 생각들로 이루어졌다 나무가 걷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발이 닿는 곳에 나무가 있다 나무가 우리를 찾아왔을까
우리의 생각이 나무에 닿았을까
그러나 우리는 나무처럼 클 수 없고 우리의 발은 하늘로 뻗은 나무의
작은 발들에 닿을 수 없다.
- 이 우성 < 사람 나무> -
비가 그친 뒤의 회색 하늘.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시인의 말처럼 무뚝뚝한 직유로서 나무들의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겨누는 거대한 창들..회색의 찢어진 구멍 사이로 덜 익은 파랑도 보였다.
온통 생각들로 이루어진 나무들이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섰다. 나무와 나 사이는 가까워 보였다. 거인처럼 커다란 나무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서있었다.
머리 속이 정돈되어있지 않을 때 나는 나무를 바라본다.
생각들이 뭉쳐 거대한 수관을 이루고 있다. 나무도 생각이 많은 날은 심하게 머리를 뒤흔들곤 한다. 밤새 바람이 나무들의 생각을 휘젓고 지나간 날 .... 나무들은 유난히 흔들린다. 나무도 그러하겠지... 밤새 그러했겠지.
나무는 세월들을, 머금고 있던 생각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어떤 반짝이는 슬픔들을 새겨놓았다. 빼곡하게 들어선 생각들을.....
멈춰서서 나는 나무의 생각들을 연달아 찍었다.
생각많은 새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 길을 내며 날았다.
생각 많은 나무의 끝에 생각 많은 새들의 둥지가 있었다.
새들은 왜 저렇게 위태로운 곳에 집을 짓는 것일까..
정호승의 산문집에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는 글이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맞춤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지어놓은 까치집을 보면 그것도 층층이 다세대 주택을 지어놓은 것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 또한 아릅답습니다.... 중략... 새들은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짓지 않습니다. 그건 새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잠들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새들이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 것은 인간이 집을 지을 때 땅을 깊게 파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이 강하개 부는 날 지은 집은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은 날 지은 집은 약한 바람에도 허물어져 버릴 것입니다....
인간들은 까치집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립니다. 화가 이종상 선생께서 까치집이 있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풍경을 그린 '이사'라는 제목이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 부분을 차 위쪽으로 하고 길게 뉘어져 있었는데 아래쪽 나뭇가지엔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트럭은 숨차게 달려가고 있었고, 그 뒤를 까치 두 마리가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발췌
새들의 집짓기는 본능이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다.
사람의 눈에는 끝없이 흔들리고 위태로워보이지만 새들에게는 최적의 성소일 것이다.
흔들리면서 세상의 위태로움을 배울 수 있기에.
나무의 이사... 뜻밖에 까치집도 이사를 간다. 트럭은 까치집을 싣고 숨차게 달려가고 까치 두마리는 집을 좇아 힘겹게 따라가고...까치 두 마리가 트럭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까치의 덧없는 날갯짓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높은 나무의 끝, 새들의 둥지가 보인다. 바람 부는 날 그 둥지는 나무를 따라, 나무와 함께 흔들린다.
나무에 깃들여 사는 새들은 이미 한 그루 나무가 되어있다.
나무들은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의 생각이 우리에게 와닿기를, 우리의 생각이 나무에게 가 닿기를..
나는 나의 생각을 나무 한 켠에 걸어둔다. 나의 생각이 나무의 생각의 일부가 되기를...
나무가 품은 생각들...갈색의 생각과 초록의 생각과 검정의 생각과 빨강의 생각과..... 노랑빛 오렌지의 생각과 회색의 생각들을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생각들을 나무는 품고 있으리라.
바람이 나무를 뒤흔들면 나무는 그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미 생각을 품은 나무들에게 인간이 저지르는 세상 일들은 얼마나 위태롭게 보일까.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