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떠받치며 저마다의 생을 감당하는 나무들은 침묵의 순교자처럼 보인다
나무들은 온몸으로 말한다
나무들은 서로 기대어 서있다. 숲에서 줄기가 고르게 쭉 뻗은 나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휘어지고 뒤틀린 나무들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폭을 맞추는 나무들. 개별화된 나무의 삶은 곧 공동체의 삶이기도 하다. 움직이지 못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는 나무들이 계절의 주기적 흐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랜 진화의 시간 동안 나무들은 본능적으로 숲의 균형점을 찾는 방법을 터득해 왔을 것이다.
태풍 맞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쓰러져있다. 쓰러진 나무들 위로 균류들의 식탁이 차려졌다. 겉으로 드러난 뿌리 표면이 사람들의 흔적으로 반들반들하다. 육안으로 보이는 뿌리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 속 뿌리는 끝없이 소통하며 나무의 성장을 완성하고 있을 것이다.
본디 외길이었던 곳에 여러 갈래 길이 났다.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선 후로 원래 숲길이었던 곳에 주차장이 생기고 등산로 입구까지 보도블록이 깔렸다, 서슴서슴 밀려난 나무들이 회색 시멘트 바닥 위로 겨우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낮은 탄식이 나온다.
몇 년 전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났던 철쭉 군락이 피어있던 곳엔 서너 개의 운동기구가 놓였다. 새 길이 나고 새 운동기구가 들어서도 그 땅은 누군가 흘린 피를 기억하리라. 우리가 미처 보고 듣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숲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랜 시간 기록했을 것이다. 고요를 뒤흔든 울부짖음과 땅으로 스며든 피를 숲은 잊지 않았을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인간을 위한 나무 계단이 새로 생겼다. 계단 옆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잇는 단단한 밧줄이 보인다. 폴리스라인처럼 보인다. 인간이 자연에게 저지르는 모든 일들도 어쩌면 ‘묻지 마’ 폭력이 아닐까? 무방비 상태의 숲에 위해를 가하는 인간들. 인간의 폭력을 단죄하는 이가 없다. 숲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계로부터 자꾸만 멈칫거리며 물러난다.
인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 플래카드에 “우리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게 아니고 아파트를 심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거대한 회색 나무들을 심기 위해 어마어마한 중장비가 땅의 폐부를 건드린다.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아파트를 지탱할 만큼의 강도를 지닌 두꺼운 철근 다발이 견고하게 얽힌다. 철근 뿌리들이 서로를 더듬으며 거대한 회색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나무들은 뿌리의 전기적 신호로 서로 소통한다고 한다. 실제 우산 아카시아 나무 군락은 아프리카 기린이 다가와 잎을 뜯어먹으면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에 전기적 신호를 보내어 기린의 침입을 알리는데 전파 속도는 1분에 몇 cm에 불과하지만 그 일대 잎사귀 맛이 모두 쓴맛으로 변해서 침입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한다. 나무뿌리들끼리 주고받는 경고의 언어가 숲을 보호한다는데 회색 나무의 철근 뿌리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위협을 경고해 줄 수 있을까?
규칙적인 간격으로 심어진 회색 콘크리트 나무에 적게는 오백 세대에서 몇 천세대가 넘는 사람들이 둥지를 튼다. 깊고 견고하게 심어진 콘크리트 나무에는 인간들을 위아래로 쉼 없이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라 부르는 수송관이 있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니 먹고사는 것은 각자 몫이다. 콘크리트 나무는 한 줌의 햇살이라도 더 움켜쥐기 위해 꼭대기에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고 더 깊게 수도관을 설치한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아주 오래전 한 알의 씨앗으로부터 시작되었을 나무들의 과거를 상상해본다. 누군가가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떤 우연들의 결과 이곳에 뿌리내리고 터를 잡았을 것이다. 나무들은 어느 한 나무만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빛과 물의 양을 공유하기 위해 암암리에 수관의 높이를 제한하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다. 배려와 나눔의 연대다.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하면서 다음 해를 위해 초록을 분해하는 법을 터득했다. 분해된 초록 아래 가려진 색소들이 비로소 드러나고 버려져야 할 것들을 낙엽의 형태로 정리한다. 버려진 것들은 거름이 되어 다시 나무의 몸속으로 돌아간다. 이듬해 봄 다시 초록을 합성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콘크리트 나무는 그 어떤 것도 나누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물을 소유하고 다른 이의 빛을 제한한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 다른 이의 서식처를 파괴한다. 회색 나무의 어깨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은 새 디자인의 가구를 사기 위해 한때는 나무였던 가구들을 버린다. 회색 나무는 욕망을 소유한 채 낡아간다. 더 강화된 철근으로 보수 공사를 할 것이고 외관을 산뜻하게 단장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식물도감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회색 나무들이 우점종이 되어가고 있다. 회색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번식 중이다. 회색 속도가 초록 속도를 앞지른다.
숲길을 걷는다. 곧은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휘어지고 굽은 나무들이 등을 맞대고 의지한다. 인간이 심은 회색 나무들은 단 한 그루도 굽어있지 않다. 회색 나무들이 성큼성큼 숲길을 점령한다. 뒷걸음질 치며 살아온 날들. 비틀어지고 굽은 허리. 땅 위로 민낯을 드러낸 뿌리들이 인간의 걸음을 견디고 있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회색 속도를 견디고 있다.
나무들은 살아있는 한 숲의 연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살아남아 숲의 이야기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 길을 오르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삼킨다. 침묵한다. 대신 온몸으로 말한다. 쓰러진 나무들, 상처 입은 나무들, 베어나간 나무들은 몸으로 쓰는 나무의 기록이며 울부짖음이다. 나무의 죽음은 숲에선 또 다른 의미의 탄생이 될 것이고 뿌리들은 꿈틀거리며 거침없이 뻗어나갈 것이다.
하늘을 떠받치며 저마다의 생을 감당하는 나무들은 침묵의 순교자처럼 보인다. 날카로운 바람에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비움을 위한 군무처럼 보인다. 소멸과 생성의 경계에서 나무의 침묵을 들을 귀를 닫고 나무의 몸부림을 읽을 눈을 감은 인간들이 또 한 그루의 회색 나무를 심고 있다. 회색 미래를 심고 있다. 벌거벗은 가지에 조각난 하늘이 걸려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들의 소리가 유난히 귀에 콕콕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