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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안개 자욱한 날, 익명의 존재들이 도시 어딘가로 흩어진다.


<안개로 가는 길>

-경인 하이웨이에서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 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밖은

마냥 안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긴 내 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말할 수 없는 이 해답

아직 안개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피하며, 피하며

비켜 온 자리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빈 소유에 떠서


안개로 가는 길

안개에서 오는 길

휙 휙

곧은 속도로 엇갈리는 생명

창밖은

마냥 안개다.

- 조병화 -



새벽안개가 잦다. 유난히 짙은 안개가 끼어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좁은 2차선 도로...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안개가 스멀거리며 몰려오는 길. 버려진 밭두렁에 차를 세우고 안개 사이로 달려오는 차를 찍는다.

멀리서 하얀 승용차의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뒤이어 샛노란 버스도 불빛을 켜고 달려온다. 아무도 타지 않는 빈 정류장, 내리는 이 오르는 이 하나 없이 버스는 안개를 가득 싣고 달린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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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간다. 버스를 타고 내리며 길을 재빠르게 걸으며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걷는 사람들, 저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과 차의 행렬을 바라본다. 안개 자욱한 도시. 사람들은 안개를 헤치고 걷는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이 가려진 사람들. 익명의 존재들, 도시 어딘가로 흩어진다.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안갯속을 걷는 사람들. 서로는 서로를 확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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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 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밖은

마냥 안개다 “


모든 것이 희미해 보이지만 해가 뜨면 서서히 안개는 사라진다. 안개가 만들어 낸 몽환적 풍경은 햇살 아래 사라지고 드러나는 도시의 얼굴은 피곤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줄자를 꺼내어 세상은 재면서 재단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를 감추고 또각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끊임없이 치수를 재고 재단하는 사람들 속에 안개는 날마다 짙다... 사람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안갯속 사람들의 기준은 은폐되어 있다. 걷는 이들과 도로를 달리는 이들과 멈춰 선 이들과.... 알 수 없는 표정의 사람들이 도시 속 어딘가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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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유난히 짙다. 가시거리가 좁지만.... 맑은 날이 이어질 거라 한다...

안개로 가고 안개에서 오는 사이 3월 하루가 또 가고 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알 수 없는 채로.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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