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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신사들과 회색 도시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 모모

회색 테러.... 회색 도시의 아침이다.

회색 하늘에 회색 해가 떠있다. 같은 일상이지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날이다.

진종일 문을 열 수 없다. 갇혀있는 사람들. 사각형 빌딩 안, 사각형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모두들 칙칙한 회색 얼굴로 갇혀있다. 해도 가려진 하늘, 장마처럼 드리운 회색 하늘 아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회색인들이 종종거리며 걷고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분주하고 각박해진다. 미라클 모닝 열풍, 본캐가 아닌 자신만의 부캐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하나의 모토처럼 굳어진 일상이다. 잠을 줄여야 남보다 더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말 그대로 피로사회다.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회색 하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들이 시가를 품어댄 것 같은 회색 하늘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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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Momo)는 미하엘 엔데가 1973년 발표한 책의 이름이자 주인공 이름이다. 모모의 발간 당시의 정식 이름은 '모모, 시간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돌려준 한 아이의 이상한 이야기'라고 한다. 씨가를 피워대는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가고 모모는 도둑맞은 시간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준다.

이탈리아의 어느 한 도시, 버려진 원형극장에 사는 '모모'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낡아빠진 헐렁한 남자 웃옷을 입고, 까만 고수머리를 한 모모, 현자 같은 청소부 베포, 언제나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는 청년 기기,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주는 호라 박사, 거북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언제나 자기 시간을 재밌게 쓸 수 있는 아이들, 회색 신사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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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화가 날 때나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오해나 분쟁거리가 생길 때나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을 때면 언제든 모모의 원형극장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모모에게 와서 장난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원형극장에서 돌멩이, 나뭇가지, 천조각 등을 이용하여 진짜 놀이를 한다. 모모는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나서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모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귀 기울여 들어주기인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시간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회색 신사들은 도시 어디에든 수시로 나타나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회색 신사들의 셈법에 따르면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은 모두 시간 낭비 요인이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 시간은 귀중한 것. 잃어버리지 마라! 시간은 돈과 같다. 절약하라!"라고 외치며 사람들의 삶을 각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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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신사들은 모모를 회유하기도 하고 외톨이로 만들기도 하면서 협박하지만 모모는 호라 박사와 거북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으로 시간의 꽃을 가져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시간을 되찾는다.


모모는 거북에게 말했다

" 부탁이야, 좀 더 빨리 걸으면 안 될까?

거북은 대답했다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거북은 아까보다 더욱 느릿느릿 기어갔다. 전에도 그랬듯이 모모는 느리게 감으로써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리게 가면 갈수록 더욱 빨리 갈 수 있었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욱 천천히 갈 뿐이라는 것은 하얀색 구역의 비밀이었다./ p 317


모모가 들고 있던 시간의 꽃에서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면서 폭풍이 일어났다. 시간의 꽃들이 구름처럼 모모의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더니 곁을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날아가. 모모. 집으로 날아가" 그것이 모모가 폰 카시오페이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꽃들은 눈송이처럼 얼어붙은 세상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시간이 다시 흐르고 모든 것이 다시 활기를 띠고. 비둘기들은 날아가고.... 이제 대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이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다정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의사들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p 359


미하엘 엔데는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회색 신사'인지도 모른다. 쫓기듯 살아가고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리하는지 목적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회색의 하루...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우리들의 삶도 그리될 수 있을까?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정말 그리할 수 있을까?............/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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