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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의 전진과 근원으로의 후퇴 사이에서

당신의 고독은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너무 시끄러운 고독

당신의 고독은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체코의 국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작가는 이 작은 책 한 권에 혼신을 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흐라발은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 소개하며 그가 세상에 온 이유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단정 짓는다.

1977년 프라하에서 지하 출판으로 유통되었던 이 작품은 1980년에 독일에서 출판되었고 체코에서는 1989년에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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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1장 제1구절부터 독특하다. '나는 36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와 같은 문장이 늘 반복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문구도 끝없이 반복되는데 이 반복되는 문장들은 책을 읽는 우리에게 일종의 쉼표처럼 작동한다. 이 책의 제1장 첫 페이지는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통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p 9


가방에 오직 책 세 권이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쓸 만한 책 한 권을 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살아간다. 오직 자신의 압축기와 함께 은퇴할 그 날을 기다리며 외삼촌의 뜰에 자신의 압축기를 가져다 진열할 생각을 하며......


책의 과대 선전이 난무하는 시대에 독특한 그의 문체에 빠져들고 독특한 전개에 빠져들게 된다. 모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난다. 기계 문명의 도입이 앗아간 한 개인의 소박한 꿈. 단지 책을 사랑했던 한탸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문명의 야만에 좌절하는 개인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그의 일시적인 사랑이었던 여인들의 모습도 한탸의 고독함을 드러내 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고독하다는 것. 모든 것이 넘치는 시대, 빨리빨리 충족되고 채워지는 시대에 과거보다 더 고독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탸는 자신의 희망이 사라지자 스스로 한 권의 폐지 다발이 되어 압축 기안으로 사라진다. 평생 분신이었던 압축기에 자신을 맡기는 한탸의 모습. 압축기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만들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너무 시끄러운 고독. 넘치는 고독들 사이에서 흐라발은 묻고 있다. 당신의 고독 또한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p 59-60 나는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일했다. 집시 여자들이 와 있던 내내 예수와 노자가 내 압축기 옆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나는 혼자였다. 버림받은 자가 되어 무작정 일에 매달렸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지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progressus ad futurum : 미래로의 전진) 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regressus ad originem : 근원으로의 후퇴)였다. 나는 녹색과 붉은색 버튼을 차례로 누르며 마지막을 남은 종이 더미를 압축동 속에 던져 넣었다. 푸주한들이 예수와 노자를 내가 있는 곳까지 데려와서는 던져놓고 간 더러운 종이들이었다.... 눈을 든 순간 예수와 노자는 사라지고 없다. 터키 옥색과 붉은색 치마를 입은 내 집시 여자들처럼 그들도 흰 회칠이 된 계단을 되올라가버렸고 내 맥주 단지는 비어있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탓에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


한탸에게 여인들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정을 꾸려본 적도 진지한 사랑을 지속해 본 적이 없다. 만차. 아름다운 만차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똥'과 관련된 일들과 엮이면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으로 여기고 오히려 한탸를 혐오한다. 보후밀 흐라발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 정점에 '똥'이라는 장치를 연결시킨다. 아름다움과 추함. 결국은 같은 의미임을 상기시키려는 것일까. 똥을 가득 실은 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아름다운 만차.. 멀리서 보이는 그녀 모습에 남자들은 시선을 뺏기지만 그녀가 다가올수록 지독한 냄새는 진동한다. 평생 책을 혐오하던 만차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똥의 오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완성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젊은 날 여인을 기다리다 샌들과 보라색 양말에 똥이 묻어 버린 한탸의 추억.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샌들과 보라색 양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유효하다. 한탸의 생에서 가장 인간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집시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녀는 불을 지키고 소시지를 먹고 스튜를 끓이며 연을 날리는 것에 행복해하는 여인이다. 여인은 우연히 나타났듯 우연히 사라졌다.



p 80-81 나는 일부러 ‘희생’이라 불리는 장소에 이르러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했다. 그녀는 나와 같은 길로 간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내가 사는 ‘영원’이라는 이름의 강기슭까지 함께 걸었다.

그녀는 내 아파트 가로등 밑까지 따라왔고 내가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지만 그녀는 자기도 거기 산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어두운 복도로 들어섰고 마당 계단을 내려가 문에 열쇠를 꽂았다. 그런 다음 뒤돌아서서 그녀에게 잘 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기가 자기 집이라 했고 내 집에 들어와 나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에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항시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을 사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불은 그녀 안에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이 없다면 그녀는 살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 집시 여자와 함께 살았다. 그녀도 내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저녁마다 우리는 말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만났다. 환한 조명보다 이런 어스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날마다 해 질 녘이면 아름다움을 향해가는 문이 열렸다. 반쯤 열린 난로 속에서 잉걸불이 붉게 타올랐다.

그녀는 내 몸 위에 길게 엎드려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손가락 하나로 내 코와 입술 선을 따라 그리며 간간이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손으로 모든 것을 말하며 망가진 쇠 난로에서 타는 불똥을 응시하면서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난로는 꺼져가는 장작이 나선형 불빛을 토해내는 동굴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서로 합의를 본 것 같았다. 이 세상에 함께 온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종전이 있기 전 해의 어느 가을날 한탸와 집시 여인은 민둥산에 연을 날리러 간다. 여자는 하늘을 향해 s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연을 두려워한다. 연이 하늘로 자기를 낚아채갈 거라고, 성모 마리아처럼 천국으로 데려갈 거라고 소리친다.... 집시 여인은 용기를 내어 연줄을 잡고 연을 날린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받아 흔들리는 연을 보며 떨고 있으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두 번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한 개비 장작처럼, 성령의 숨결처럼 단순했던 내 어린 집시 여자, 내 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여자. 건물 잔해 속에서 찾아낸 무거운 널빤지들을 커다란 나무 십자가처럼 어깨에 매고서 끌고 오던 여자, 감자 스튜와 말고기 소시지면 족했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가을 하늘에 커다란 연을 날리는 것 이외에는 더 바라는 게 없었던 여자...


한탸는 그녀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마이다네크 혹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져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라고 중얼거린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기억 속에 완전히 삭제된 그것들은 무엇일까? 한탸에게 있어서.

부브니에선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 한 대가 한탸의 압축기 스무 대 분량의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슨 역만 한 넓은 유리 홀을 보고 괴물 같은 압축기가 노호하는 소리를 듣자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p91오렌지색이나 푸른색 장갑을 끼고 노란 미국식 캡 모자를 쓴 젊은 폐지 압축공의 모습을 보며 한탸는 그들이 낀 장갑에 모욕감을 느낀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한탸는 장갑을 단 한 번도 끼지 않았으니까... 책들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가 가마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용기가 가득 차면 거대한 수직 나사가 천장에서 내려이서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종이를 짓누른 뒤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 책들.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책들...


이제 새로운 작업 방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버려진 책들을 만나며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아온 늙은 압축공 한탸가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끝이었다. 그러나 양다리를 벌린 채 손을 허리에 갖다 대고 우유와 코카콜라를 병째 들이키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한탸는 분노한다. 새 인간, 새 방식, 새로운 시대의 도래 앞에 한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기력한 절망과 방향성 없는 분노뿐이다.


누군가가 쓴 책을 누군가는 교정하고 누군가는 삽화를 그려 넣은 그 책을 현장 학습 온 어린 학생들이 야만스럽게 달려들어 찢어내고 있다. 한터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이런 일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여교사는 아이들에게 폐지의 재활용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책의 내용물을 뜯어내는 시범을 보인다. 아이들은 순서대로 달려들어 책 표지를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책들은 반항하지만 작은 손가락을 이기지 못한다. 한탸는 이 광경을 보며 리부시의 닭 가공 공장을 떠올린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일정 속도로 내려오는 살아있는 닭들의 내장을 숙련된 동작으로 뜯어내던 여공들도 저 아이들과 똑같았다. 젊은 여자들은 웃고 농담을 하며 그 작업을 즐겼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여공들의 손에서 형제들의 목이 꼬챙이에 꿰이는 순간에도 닭들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모이를 쪼아댄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한탸는 아이들의 야만적인 광희를 지켜보는 데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욕조 속의 세네카처럼 폐지가 가득한 압축 통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소장이 한터를 해고하고 젊은 직원 두 명을 채용한 순간....... 폐지 더미 속에서 단 한 권의 보물을 발견할 의망이 사라져 버린 한터는 이제 그 자신이 서서히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온전히 잊힌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이미 재가 되어버린 어린 집시 여인과 연을 날린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끝은 폐지 압축기 안에서 한탸가 압축되는 장면이다. 그 순간 마침내 떠오른 어린 집시 여인의 이름 ‘일론카’. 연을 타고 하늘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의 이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죽음 앞에 마침내 떠오른 이름... 생의 연민 같은 이름.

인간적이지 않은 하늘 아래서 무려 35년을 폐지 압축을 하며 살아온 한탸에게 하늘은 비로소 인간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연민의 얼굴을.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 어머니와 외삼촌과 집시 여인과 그리고 한탸... 그리고 수많은 책들.

바니타스 바니타툼(헛되고 헛된 것들 ) 사이에서 균형 잡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연민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살고 있다.


p131-132

“ 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 그래 프로그래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

나는 녹색 버튼의 작동을 중단하고 폐지가 가득한 압추공 속에 나를 위한 작은 은신처를 마련한다. 나는 여전히 쾌활한 사내다. 내가 자랑스럽고 부끄럼이 없다...... 욕조에 들어가는 세네카처럼 나는 한쪽 다리를 압축통에 넣고 잠시 기다린다. 다른 한쪽 다리도 마저 통 안으로 무겁게 떨어뜨린다. 나는 똬리를 틀고 살핀 다음 무릎을 꿇은 자세로 녹색 버튼을 누르고 완충물인 책과 폐지 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이제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멜란트리히 인쇄소 지하실에서 백지를 꾸리느니 여기 내 지하실에서 종말을 맞기로 했다. 내 승천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압축통 벽에 눌려 내 다리와 턱이 들러붙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이어진다 해도 결단코 두 손 놓고 천국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나를 내 지하실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책의 단면이 내 늑골을 뚫고 들어온다.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다. 압축기의 중압에 내 몸이 아이들의 주머니칼처럼 둘로 접힌다....

그 순간 내 집시 여자가 보인다. 끝내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어린 여자. 우리는 민둥산에서 연을 날린다. 그녀가 연줄을 쥐고 있다. 저 위를 올려다보니 연이 비통한 내 얼굴을 하고 있다..... 집시 여자가 밑에서 보내는 메시지 하나가 연줄을 타고 올라간다. 메시지가 불 규직적으로 흔들리며 전진해 마침내 나와 닿을 거리에 이른다. 나는 손을 내민다. 어린아이가 쓴 듯한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일론카. 그렇다. 이젠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132페이지의 얇은 소설임에도 무겁고 묵직하다. 1장에서 8장까지 소설이 가지고 있을 법한 그 어떤 극적인 스토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것은 한탸의 독백과 자조, 분노와 절망, 그리고 추억과 회상.

기계문명의 야만, 책의 죽음 앞에 맥주를 마시는 한탸와 대조적으로 콜라와 우유를 마시는 젊은 노동자들.

닭 가공 공장의 노동자들.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해체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생을 이어간다. 컨베이어 벨트의 닭들은 죽을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모이 한 줌을 더 먹으려 발버둥 친다.

한탸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책들의 죽음을 견딜 수 없다. 집시, 노숙자, 버림받은 자, 노동자... 가난한 자....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래로의 전진'을 빙자한 '근원적 후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탸가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바로 그런 '미래로의 전진'을 빙자한 '근원적인 후퇴'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려원.


* 그 외 작품 속 문장들 발췌

P. 12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세차게 퍼붓는 비와 건물 폭파 기사들을 나는 사랑한다. 거대한 타이어에 바람을 넣듯 폭파 기사들이 집과 거리를 송두리째 날려 보내는 광경을 나는 몇 시간이고 서서 지켜본다.

P. 33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방 문틀을 가린 백여 권의 책을 치웠다. 내 키를 날짜와 함께 잉크로 표시해둔 문틀이었다. 문설주에 등을 붙이고 책을 갖다 대어 키를 잰 뒤돌아서서 선을 그었다. 팔 년 새에 9센티미터가 줄었다는 걸 맨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침대 위로 솟은 책들의 천 개를 올려다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

P. 61~62 우리가 아직 도끼를 들고 뛰어다니며 염소를 치던 시절, 집시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 국가를, 이미 두 차례나 쇠락을 경험한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불과 두 세대째 프라하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 집시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곳에 제의의 불을 지피는 걸 좋아한다. 오로지 기쁨을 위해 타오르는 유목민의 불이다. 대충 쪼갠 장작개비들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모든 사고 이전에 존재하는 영원의 상징이며 어린아이의 웃음 같기도 한 불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선물 같은 무상無償의 불이며 환멸에 젖은 행인은 더 이상 알아챌 수 없게 된 요소들의 생생한 표징이다. 방황하는 눈과 영혼을 덥혀주려고 장작개비들을 태우며 프라하 거리의 구덩이들에서 태어난 불이다

P. 75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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