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운다

< 백화 >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보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백석의 시 <백화>는 순우리말로 흰 자작나무란 뜻이다. 눈처럼 흰 자작나무 숲에 들러 싸인 깊은 산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작나무는 모든 것을 위한 '모든 것'이다. 집을 구성하는 대들보, 기둥, 문살도 자작나무고, 메밀국수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고 박우물도 자작나무로 되어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북부지방 사람들에게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이 잘 붙고 오래가서 불쏘시개로 유용하다. 자작나무는 자신의 몸을 태울 때 ‘자작자작’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눈 덮인 산골마을 마가리에 자작나무 장작이 타들어가면 자작자작 소리 들려오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먼 산의 여우는 캥캥 울어댈 것이다. 자작나무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 그들도 자작나무를 닮았을 것만 같다.



자작나무는 서식지가 대부분 매우 춥고 눈 쌓인 곳이어서 과도한 햇빛은 반사하고 적당한 열만 흡수하기 위해 수피가 하얗다고 한다. 자작나무의 영어 이름인 버취(Birch)의 어원은 ‘글을 쓰는 나무껍질’란 뜻이다. 사람들은 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인 자작나무 껍질을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글을 쓰는 나무껍질. 실제로 종이가 귀하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여 ‘낭만 나무’라고도 불린다.

돌돌 말린 자작나무 수피는 하얀 붕대처럼 보인다. 자작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몇 겹 인지도 모를 붕대를 감고 있다. 나도 붕대를 감고 산다. 하지만 아파서가 아니다. 아마도 세상 속에서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세상의 것들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세상 속에서 입을 통해 발화되지 못한 언어들은 여전히 붕대 안에 싸여있다. 자작나무들은 바람이 불어올 때 자작자작 이야기를 나눈다. 입으로 못다 한 말은 수피에 적어가며 돌돌 말린 제 몸을 풀어가며 밤새도록 자작거릴 것이다.



자작나무는 햇빛을 좋아하여 산불이나 산사태로 빈 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리 잡고 빠른 속도로 숲을 이루고 다른 종의 나무와는 어떤 경쟁도 허용하지 않는 듯 바람이 불면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경쟁자 나무의 수관을 때려서 그 나무의 성장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이기적인 행동으로도 보이지만 결국은 일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투쟁처럼 여겨진다.  

불모지에서 얼마나 빨리 자라 수관을 형성하고 우점종이 되느냐는 나무의 생존에 중요하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겯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홀로 선 것들의 치열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대지에 뿌리박고 온 몸으로 중력에 역행하여 위를 향해 팔을 뻗어 올리는 것. 눈부신 새하얀 것들이 직립해있는 모습은 경외감을 준다.


하얀 수피에 문신처럼 지흔이 나있는 자작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서있다. 짧은 시간 동안 그 어떤 나무보다도 저돌적이며 치열하게 생을 살다 간다. 못다 한 말들은 껍데기에 적어두고 자작거리며 소멸한다.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는 새하얀 자작나무 숲은 온몸을 다해 직립한 것들의 기록이다. 촘촘한 자작나무 끝은 하늘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창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어오면 깊은 숲 어디선가에서 자작나무들은 또 밤새 자작자작 속삭일 것이다.

글을 쓰는 나무 껍질을 지닌 나무...... 결국 글을 쓰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자작거리며 치열하게 글을 쓰는....어느집 들보와 기둥이 되면서도 ...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이 되어 불에 타면서도... 해가 비쳐 들어오는 문살이 되면서도... 누군가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면서도.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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