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나무는 잘 어울리는 세트 상품처럼 보인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새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숲 속의 모든 새들이 울어대는 소리였다. 떠도는 의식 속으로 새소리는 아침마다 쏟아져 들어왔다. 새소리에 떠밀려서 나는 처음 맞닥뜨리는 낯선 시간 앞으로 밀쳐 갔다 새들은 소리쳐서 일출을 맞았고 나는 아침의 시간에 이마를 부딪혔다.
봄으로 다가갈수록 새들의 아침은 바쁘고 요란했다. 새들은 영세 유전하는 그 종족의 소리로 제가끔 울어대는 것이다. 아침 새들의 소리는 온 숲에 넘치고 들끓어도 섞이지는 않는다. 새들은 일제히 울었고 저마다 따로 울었다. 아무도 듣는 자 없는 밤에도 새들은 제 목청으로 제 울음을 울어댔다. 새들의 소리는 그 종족이 건너온 수억만 년의 시공을 향해서 토해내는 독백처럼 들렸다.
-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
이른 아침 새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내린 비로 대지는 젖어있고 마른나무 가지 위로 조그만 것들이 영글어있다. 단단하고 조그만 것들. 잎눈이거나 꽃눈일 것이다. 까치 두 마리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난다. 까치가 나뭇가지를 단단히 붙잡고 자리 잡는다. 나무는 새들의 집이다.
아래에는 도시의 살찐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흙속을 헤치고 찾아낸다.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보이는 날카로운 두 발... 날개가 없었다면 전형적으로 불안정한 구조다. 날개를 편 순간 두 개의 작은 다리는 존재조차 희미해진다. 새들이 하늘을 가르며 난다. 새들이 허공에 남긴 흔적들. 새들은 하늘에 길을 낸다. 자기들만이 아는 길. 그 길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이어져있다.
“새들은 영세 유전하는 그 종족의 소리로 제가끔 울어대는 것이다. 아침 새들의 소리는 온 숲에 넘치고 들끓어도 섞이지는 않는다. 새들은 일제히 울었고 저마다 따로 울었다. 아무도 듣는 자 없는 밤에도 새들은 제 목청으로 제 울음을 울어댔다.” 김 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의 표현대로 새들의 소리는 넘치고 들끓어도 섞이지 않는다. 일제히 울어도 저마다 따로 운다. 아무도 듣는 이 없어도 저마다 우는 새들의 소리를 아침의 교향곡처럼 듣는다.
< 새와 나무 >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류시화 -
새와 나무는 잘 어울리는 세트상품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가 인테리어 업자에게 자연에서 무언가를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다면 새와 나무를 거실에 세트상품으로 들여와 달라고 할 것 같다. 나무 없는 텅 빈 하늘을 나는 새, 전깃줄에 걸터앉은 새는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새가 오지 않는 숲은 적막하다. 특히 겨울의 헐벗은 나뭇가지 위로 하늘이 드러나 보일 때 새의 부재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류시화 시인의 시 <새와 나무>에서 시적 화자는 새가 날아와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다른 나뭇가지는 흔들림이 없는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유독 흔들린다. 새가 날아와 그 나무에 둥지를 틀면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이 자꾸만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라는 새가 날아왔지만 둥지를 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새와 나무, 서로 간절함의 대상이다. 끝없이 흔들리게 만드는 대상, 흔들림은 어쩌면 고통이면서 기쁨일 것이다.
가시나무 새는 죽기 직전에 일생에 단 한 번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
그 새는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 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이 세상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다.
어떤 새소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
먼 옛날 켈트 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한 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콜린 맥컬로우' 『가시나무 새』
마른 나뭇가지 까치 한 마리 앉아있다. 가지들이 새를 포위한 것처럼 보이는 풍경 속 나는 문득 콜린 맥컬로우의 소설 『가시나무 새』를 떠올린다. 나뭇가지는 가시는 아니지만 가시가 될 수도 있다. 새에게 가지의 끝이 가시처럼 여겨지는 날도, 부드러운 붓처럼 여겨지는 날도 있을 테니.... 죽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가시나무를 찾아다닌다는 새. 조류 도감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켈트족 전설이지만 어딘지 진실처럼 다가온다.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부르는 노래. 자신의 생에 대한 서사일 것이다.
"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한 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에서 피어난다"
아름답고 순수한 것.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가장 처절한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시나무 새들은 피 흘리는 붉은 가슴으로, 아름다운 노래로 보여준다.
새들의 계절이다.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기 시작하면 영세 유전하는 그 종족의 소리로 일시에 그리고 제각각 울어댈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저마다의 가시나무를 찾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길을 내며 분주히 날아다닐 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하여 나는 나만의 가시나무를 찾아 가슴에 피 흘리며 기꺼이 죽어갈 수 있을까.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