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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아버지는 단지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더 이상 기생하지 않아도 되는 숙주의 삶에 대한 갈망/ 영화 <기생충>

기생충     


  <제시카 선생님에게서 나는 냄새가 이 아줌마한테도 나.

  김기사 말이야.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도 선을 잘 지켜. 다 좋은데 뭐랄까 묘한 냄새가 나. 

지하철 냄새라 해야 할까. 빨래 삶을 때 나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암튼 그런 거.

  난 지하철 타본지 하두 오래되어서 모르겠네.>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은 전원 백수다. 피자가게 포장박스 접는 일이 온 가족의 수입원인 그들에게 우연히 기우의 고액 과외 자리는 기택 가족의 희망이 되었다. 명문 대학생으로 위조한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 집으로 과외 면접을 보러 간 기우는 고등학생 딸 다정에게 호감을 갖는다. 트라우마를 지닌 어린 아들 다송의 미술치료 선생님으로 기정이 시카고 주립대학교 졸업한 제시카라는 이름으로 위장 취업하고 또다시 윤기사의 자리를 대신해 기택이 박사장의 기사가 된다, 유명한 건축가 남궁 현자님 때부터 집사 겸 가정부 일을 해온 문광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약점을 이용해 결핵환자로 내몰고 기택의 아내 정숙이 가정부로 들어온다.

  휴대폰 요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기택 가족은 박사장 가족의 기생충이 된다. 이 영화에는 계단이 끝없이 등장한다. 다솜의 공부방까지 올라가는 상승적 계단과 비를 흠뻑 맞으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기택의 반지하방. 부부와 남매로 구성된 4인 가족. 경제적 상황은 극과 극이다. 궁지에 몰린 가족들이 기택에게 ‘해결 방안이 뭐냐’? “라고 묻자 기택은 ‘무계획이 답’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계획들은 깨지게 마련이니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깨질 일이 없지 않으냐.


  박사장 부부도 모르는 사실. 구조상 지하실 벽면을 밀고 들어가면 깊고 좁은 계단이 이어지고 그 아래 아무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 바로 문광의 남편.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가 대만 카스텔라 사업 실패로 엄청난 빚을 지고 도피 중이다. 그는 독백하듯 기택에게 말한다. “여기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이곳을 나간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마치 여기에서 태어났던 것처럼도 생각되고 여기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 책꽂이에 꽂힌 낡은 법률 관련 도서는 근세가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해왔음을 보여준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원조 기생충인 문광 부부에게 새로운 기생충이 나타난 셈이다. 원조 기생충인 문광 부부와 기택 가족의 갈등은 기생하는 것들끼리도 엄연한 레벨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기생하는 것들끼리의 숙주 안에서의 공생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다송의 생일을 축하하러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자 기택 가족은 마치 그 집이 자신들의 집인 것처럼 마음껏 즐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쫓겨난 가정부가 집을 찾아오고 지하실에 숨겨둔 남편의 정체가 비로소 밝혀진다. 원조 기생충과 새로운 기생충 가족의 난투가 벌어진다. 처음엔 문광이 감춰둔 남편 때문에 충숙에게 하소연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나중엔 기택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 충숙이 문광에게 약자가 된 입장에서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잡고 세력 다툼을 한다. 문광은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사모님께 보내기 버튼 한 방이면 모든 경쟁자를 북한 핵미사일처럼 한 방에 날려버릴 생각을 하니 통쾌하다. 엎치락뒤치락 휴대폰을 뺏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데 느닷없이 사모님의 전화가 걸려온다. 8분 안에 박사장 가족이 도착할 테니 짜파구리에 한우를 넣어 즉시 만들라는 특명을 내린다. 짜파구리가 끓는 8분 동안 기생충들은 갑자기 불 켜진 집안의 바퀴벌레처럼 분주하다. 깨진 그릇들을 치우고 음식들을 버리고 냄새와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러 지하실에서 문광이 의기양양하게 올라온다. 충숙은 급한 김에 발로 걷어차는데 뇌진탕으로 사망하게 되고 원조 기생충인 근세는 분노한다.


  결정적인 기생충들의 난투는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날 다송의 생일 축하파티 현장에서 끔찍한 살인의 형태로 재현된다. 먼저 문광의 남편 근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목표물을 기다린다. 기우 역시 부잣집 아들 민혁이 건네 준 수석을 들고 지하실의 원조 기생충을 처리하기 위해 내려간다. 근세는 지하실로 내려온 기우를 돌로 내리쳐 죽이고 파티가 벌어지는 가든으로 나간다.

  4년 동안 지하에 기생하던 원조 기생충 근세는 계단을 통해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지상사 회로 진입한다. 때마침 제시카 샘이 케이크를 들고 다송에게 걸어갈 때 그는 칼을 휘두른다. 인디언으로 분장한 박사장과 김기사는 느닷없는 상황에 경악하고 정원은 아수라장이 된다. 칼을 뺏기 위한 기생충들의 난투가 벌어지고 지상 인간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다송은 초등 1학년 때 겪은 충격이 재현되자 또다시 기절하고 놀란 박사장은 김기사에게 차 열쇠를 달라고 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이 나간 김기사는 기정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피를 보며 하염없이 절망한다. 충숙과 근세의 사투가 벌어지는 데 박사장은 김기사가 던진 자동차 키를 집으려다 코를 막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바로 그 장면을 바라보는 기택의 눈빛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택은 운전기사와 사장이라는 사회적 위계를 떠나 지상 인간 대 지하 인간의 대결을 감행한다. 기택은 자동차 키를 들고 돌아서는 박사장의 가슴에 칼을 꽂고 정신없이 지하로 달아난다. 


  살인의 발단이 지하에 갇혀있던 원조 기생충이 아내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기택이 사장을 살해한 것은 가난을 혐오하는 사장의 태도에 대한 분노이다. 세상의 양극화. 빈과 부. 삶의 격차, 위조된 학력일지라도 일단은 명문이라는 두 글자면 모든 것이 통과된다. 꿈조차 꿀 수 없는 기택의 가족, 그들은 선한 의도를 지닌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반지하 집 앞에 오줌을 내갈기는 취객에게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낼 정도로 소심한 가족이었다. 그런 기택이 가난의 냄새 때문에 코를 막는 사장을 살해한다는 것은 기택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변기가 넘치고 모든 것이 떠내려가고 체육관에서 잠을 자면서도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은 다분히 냉소적이다. 무엇이든 계획을 먼저 세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계획마저도 부유한 사람만이 세울 수 있는 특권인지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은 먼 훗날도, 오래된 과거도 아닌 ‘지금 여기’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굴할 수 있는지, 우리의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짓밟힐 수 있는지. 기생하는 사람들끼리도  기생의 순위를 두고 얼마나 절박하게 싸워야 하는지. 싸울 수밖에 없는지, 기생충들이 하나의 숙주 안에서 공생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숙주 몸에 붙은 기생충. 숙주를 죽이기 위한 의도는 없었다. 기생충은 숙주를 죽이는 순간 자신들도 자멸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숙주가 기생하는 것들만이 풍기는 그 미묘한 냄새에 대해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기생하는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혐오를 난생처음으로 깨닫게 되고 가진 자. 숙주에 대한 분노를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잘 나가는 숙주가 사는 지상 세계와 기택이 살아가는 반 지하. 그리고 원조 기생충이라 할 수 있는 근세가 살아가는 지하 세계. 봉준호 감독은 이 3가지 세계가 지닌 위선과 원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악한 의도를 지닌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이어가지만 기생충들끼리의 갈등이 결국은 숙주를 비롯한 모두의 자멸을 가져온 셈이다.


   젊고 유능한 박사장은 가장 고상하고 세련된 척 하지만 정작 제시카가 의도적으로 벗어두고 간 싸구려 팬티에 원초적 욕구를 느낀다. 박사장의 아내 역시 뒤끝 없이 심플하지만 모든 상황을  논리적인 판단 없이 자기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의 말만으로 믿어버리는 단순한 인물이다. 기정과 기우, 기태, 정숙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 숙주를 영악하게 이용하는 기생충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저 평범한 이웃일 뿐이다. 지하세계의 원조 기생충 근세 역시 대만 카스텔라 사업 실패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태와 비슷하다. 근세의 아내이면서 오랫동안 지상 세계에서 고상한 집사 노릇을 해온 문광. 고상함을 가장하지만 결국은 원조 기생충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숙주를 이용하는 기생충일 뿐이다


  냉소적인 웃음. 무언가 웃기면서도 서글픈 영화. 대사 한마디 한 마디에 숨은 진지성. 가장 기택의 표정 변화. 상황의 급진적인 진행. 느긋하고 편안하게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감추어진 것들이 하나 둘 터져 나오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이다. 또한 오직 한국에서만 가능한 것들. 짜파구리와 갈비 같은 음식들이 소개되는 것도 흥미롭다. 잘 나가는 명문대생 민혁이 기우에게 준 수석은 숙주와 기생충들과의 모든 관계에 불행의 단초가 된 셈이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반 지하 가족이 지상세계로 걸어갈 꿈을 꾸게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실제로 기우는 기택이 그 저택 지하실에 기생하는 것을 보면서 꿈을 갖게 된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 일단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고 그 집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아버지가 계단을 걸어 당당하게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는 꿈 말이다. 반지하의 삶을 접고 지상의 삶을 살아보는 일. 기생충의 삶을 접고 숙주로서 살아보는 것이다. 햇빛을 온몸으로 당당하고 공평하게 맞아보는 것이다. 


  ‘지금 바로 이곳’은 숙주와 기생충들아 공존하는 세상임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질서, 위장된 평화 아래에는 기생충들끼리의 끝없는 사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언젠가는 숙주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숙주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기생충들이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부자여도 착하다’는 기택의 말을 ’ 부자니까 착하다 ‘는 말로 정정하는 충숙. 착할 수 있는 바탕에도 어느 정도의 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부를 누리는 사람들은 가난을 알지 못한다. 빈과 부. 빈자들의 꿈. 신분 상승은 오직 경제적 신분 상승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기생충오스카의 선을 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고르라면 단연 설국열차다. 긴긴 기차 안에서의 계급과 암투. 환락과 타락. 부품 인간. 이데올로기, 교육의 허구성을 다룬 설국열차는 강렬한 메타포를 품고 있다. 설국열차의 어마어마한 스케일과는 달랐지만 말 그대로 대단한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선을 넘어오는 가난의 냄새. 혐오의 냄새가 메타포다. 냄새는 차별화된 채로 쉼 없이 빈부를 넘나 든다. 반지하로 가기 위해 수없이 내려가는 계단과 박사장 저택의 계단은 상승과 하강의 메타포다. 기우가 과외 면접을 보러 오르는 계단과 지하에 기생하는 원조 기생충 근세의 공간은 끝없는 하강의 계단이다.


  숙주인 박사장과 원조 기생충인 근세. 문광 부부 그리고 원조 기생충의 자리를 탐하는 기택 가족.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 사이에도 서열이 있음을 보여준다. 기생하는 것들끼리의 공생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지상의 고급 저택과 기택의 반지하. 근세의 지하는 단순히 빈과 부의 양극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류로 가지 못할 바에는 숙주에 기생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절함은 비극을 낳았다.

  부자이면서도 착한 박사장 부부는 부자니까 착하기도 하다. 무언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위장된 평화는 원조 기생충 근세가 사는 지하로부터 붕괴된다. 분노는 결과적으로 살인을 불렀다. 박사장의 죽음은 그가 가난에 대한 혐오 때문이기도 했다. 코를 틀어막는 그의 행동에 기택은 자신도 모르게 부자이면서도 착한 박사장을 응징한다. 그리고는 지하 세계로 숨어든다.

모든 것이 잠잠해질 무렵 기우는 아버지께 "돈을 벌어 이 집을 사겠다. 그날이 오면 아버지는 단지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더 이상 기생하지 않아도 되는 숙주의 삶에 대한 갈망이다.


  영화 속 저택은 세트라 한다. 실제 그런 집을 소유하려면 봉 감독의 말에 따르면  최저 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 해도 547년이 걸린다고 한다. 사실상 조선왕조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불가능한 역설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역설이 기억에 남는다. 빈곤층은 계획을 세운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쩌면 그들에게 계획을 세우는 일도 사치일지 모른다.

  이 영화는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는 마틴스 콜 세이지 감독의 말처럼 지극히 한국적이다. 제시카쏭은 독도쏭, 짜파구리에 섞는 한우, 갈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냄새가 오스카의 선을 넘었다는 것. 그리고 오스카가 코를 틀어막지 않고 열광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영화라 하겠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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