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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The Bacchus Lady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영화'. 윤여정의또 다른매력을 만나다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탑골 공원 박카스 할머니 65세 소영은 노인 고객들 사이에서 '죽여주는 여자'로 입소문을 탔다. 청자켓과 청 스커트, 검은 망사티,  온갖 잡동사니(박카스, 소주, 성적인 도구들)가 들어있는 가방을 멘 소영.  탑골 공원 입구에서있기만 해도 고객들은 꽤 유명한 (?) 그녀에게 접근한다.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 드릴게." 

배우 윤여정의 대사다.  왜 그 말이 추하게 들리지 않는 것일까?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찾아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젊은 영화감독에게 소영은 말한다. 어릴 때부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안 해본 게 없다고. 식모살이, 공장, 그러다 동두천 미군기지에 가면 시급이 높다기에 그곳으로 빠져들고, 나이 먹은 뒤  폐지를 주워 파는 일보다는 그래도 이 일이 

나을  것 같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당신도 이런 이상한 거 찍지 말고 돈 되는 거 찍어." 소영은 다큐멘터리 제작자에게  충고한다.

돈 되는 것, 아름다운 것, 불편하지 않은 것, 재미있는 것, 낭만적인 것....

그 많고 많은 것들을 놔두고 이재용 감독은 왜 이토록  불편하고 낯설고 민망하고 금기시하고 싶은 것들을 영화로 제작하였을까?


트랜스젠더 티나와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성인 피규어 제작자 도훈, 코피노 소년 정민호. 마트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출신 여인... 호객 행위를 하며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는 박카스 아줌마들... 필리핀 여인 민호 엄마를 외면하는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 중풍에 걸린 노인, 치매 노인,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남는 노인, 성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것만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미군과 기지촌 여자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들.. 어떤 형태로든 버려진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냉소적인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다.

산부인과에 임질 치료를 받으러 간 소영이 의사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 태어난 민호를 얼떨결에 자기 집으로 데려와 보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종로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호객행위를 하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손님을 낚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접근해도 단속반이 떠서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더러운 여자라고 대놓고 욕을 하는 노인도 있고 심지어 손님을 잘못 찍어 젊은 날 같이 일했던 동료의 남편에게 접근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허탕 친 날이 늘어갈수록 먹고 살 일이 아득하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박카스 아줌마인 그녀를 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그녀를 천사로 기억한다.

 병실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송노인은 소영에게 자신을 도와달라 부탁하고 그녀는 정말 그를 죽여준다.

치매 걸린 노인을 죽여주고... 마침내는 아내와 사별 후 혼자 남은 재우가  호텔방에서 수면제를 치사량 복용하고 죽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죽여준 것은 아니었고 죽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녀는 구속된다.

한국말로 "죽여주는"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단어 뜻 그대로 죽음과 관련된 의미,  또 하나는 너무 좋아서 죽을 정도로 만들어 준다는 의미다. 소영은 말 그대로 죽기를 바라는 이들을 죽여주는 자살 조력자이면서 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죽여줄 정도로 잘 해소시켜주는 팜므파탈이다.


다량의 수면제 복용 후 호텔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노인의 죽음과 관련하여 소영은 경찰에 체포되는데

경찰차 안에서 "겨울은 추우니 봄에 감옥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자 경찰관은 정신 나간 여자를 보듯 냉소적으로 웃는다.

사람들은 진실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것 들만 살펴보면 그녀는 노인의  돈을 뺏기 위해 농약을 먹여 죽게 한 죄, 살해 의도를 가지고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죄,  실족사한 것처럼 위장하여 치매노인을 산 정상에서 살해한 죄... 불법적으로 성매매를 하고 다닌 죄....

영화의 끝 장면은 끝내 겨울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는 제6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제40회 홍콩 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버라이어티지의 평론가 매기 리(Maggie LEE)는 '죽여주는 여자'에 대해 “이재용 감독은 사회 안전망 밖에 있는 노인들의 냉혹한 현실에 주목하였고,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유머를 담아 캐릭터들을 표현하였다.”라고 평했다. 

<죽여주는 여자>는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죽여주는 영화이고 노인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박카스 여인 소영은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 위선을 마구 죽여주는 여자다.

죽여주는 여자...

우리 안의 무엇인가를 마구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가 수인인 채 구치소에서 죽어갔다......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며 누가 그녀를 죽여 버렸는지... 우리 안의 무엇이 죽어버렸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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