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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뭔가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지 않니.....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일본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는 가끔 네 꿈을 꾸게 되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

 ..

망설이다 보니 시간이 흘렀네.

나는 비겁했어.

너한테서 도망쳤고,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거야.

머지않아 나는 아마 또 처음인 것처럼 이 편지를 다시 쓰게 되겠지?

 ..

바보 같은 걸까? 나는 아직도 미숙한 사람인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아.


우연히 윤희에게 온 편지를 읽게 된 딸 새봄은 엄마가 그동안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자 함께 여행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엄마와 딸의 동행, 사랑의 상실과 복원, 두려움과 용기, 화해와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다.     

윤희는 마침내 쥰을 만나게 되고 오래전 이별의 시점에 멈춰버린 자신과도 결별한다. 윤희와 쥰은 이제야 삶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에서 과거에 쥰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윤희가 감당해야 했던 상처를  보여준다. 금기시되던 동성애. 일본의 쥰도 마찬가지다. 이방인 같은 현실 속애서 쥰과 윤희는 늘 지쳐있었다.     


윤희에게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지 않니...   

  

편지를 쓰지 않으면 하고 싶은 말이 쌓이게 된다.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망설이다 쌓여가는 시간     


그때 그 시절은 서로에게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너에게서 도망치고 나에게서 도망치고 비겁함의 시간들.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금기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일본의 쥰과 한국의 윤희. 서로를 잊지 못하면서도 편지를 부치지 못하는 그들에게 윤희의 딸 새봄이 매개자가 되어준다.


사랑 없는 결혼, 사랑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많디.

사랑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삶에 실패하고... 사랑에 실패한 이들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벌을 주고 싶어 한다. 그 시절을 관통해온 사랑은 숭고했지만 비겁한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보면서 완결되지 못한 것들의 흔적이 쥰과 윤희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상처로 남는 것이 안타까웠다.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윤희는 건강해졌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이제 평생 윤희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19살 윤희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한정식 집에 이력서를 내기 위해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엄마 윤희를 향해 새봄은 카메라를 들이댄다. 윤희는 햇살 아래 활짝 웃는다.  


영화에서 윤희는 첫사랑을 찾아가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자아 찾기와 여성의 연대, 성별,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통해 결국 영화는 나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가,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비겁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 지난 삶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도, 도망치려고도 하지 말라고.. 더 나아가 지난 삶의 흔적에 매몰되어있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임대형 감독은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영화이다. 사랑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각자 자기 분량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면서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모녀의 여행기를 다루고 있는  무비이기도 하고, 멜로드라마이기도 하고, 또한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라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는 일본 북해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쥰과 윤희의 과거 찾기가 아름답게 그려진다. 

치워도 치워도 자꾸만 쌓이는 눈... 쥰과 윤희의 막막했던 삶의 은유 같다. 그러나 눈은 언제고 그치게 마련이다. 쥰과 윤희에게도 눈이 그쳤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뭔가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지 않니?....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특별할 것도 없는 가장 단순한... 말들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누구나 있으니까. 살다 보면 뭔가 참을 수 없어질 때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니까..... 잘 지내니? 묻고 싶어 지는 날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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