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깃( feathers in the wind )

푸른 공작 깃을 머리에 꽂고 탱고를 추는 여자/ 우도의 아름다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바람 부는 '우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영화. 송일곤 감독 제작의 '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과 어디선가 다가오는 사람.

지나간 사랑과 오고 있는 사랑... 깃과 깃 사이 한 사랑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인다.


 푸른 공작 깃을  비녀처럼 꽂은 여자가 춤을 춘다. 우도의 바람아래. 우도의 바닷가에서 쉼 없이 턴을 하는 그 여자의 독무는 슬퍼 보이지만 아름답다. 

 10년 뒤 그날이 오면 만나기로 했었다. 바로 오늘 나는 초조하게 우도의 바람 부는 바닷가를 서성인다. 독일에 가서 피아노를 더 배우고 온다던 그녀는 독일인 지휘자와 눈이 맞아 그곳에 정착해버렸다. ‘그녀가 올까? 과연 오늘을 기억이나 할까? 결혼을 했어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닐까?’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은 즐거움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다림 뿐이다.


 우도의 바람은 거세다. 어느 결엔가 바람은 비를 동반하고 있다. 나의 오랜 연인이었던 그녀는 마지막 배로 오지 않고 대신 분신과도 같은 피아노가 도착했다. 비를 품은 바람은 더 거세지는 데 민박집 앞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를 방 안으로 옮길 수가 없다. 민박집. 10년 전 그녀와 내가 함께 묵었던 그 방에서 나는 우두커니 앉아 마당의 피아노를 바라본다. 

  삼촌이 보이지 않는다고 19살 민박집 아가씨는 서둘러 삼촌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무엇이 삼촌의 마음을 빼앗아 갔을까? 늦은 밤 삼촌의 귀환. 19살 조카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말을 잃어버린 삼촌이 매미처럼 매달려 있다.

 비록 피아노가 대신 왔지만 나는 그녀가 오리라는 희망을 밤이 새도록 버리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으면 할 말이 없는 법이다. 거울을 보며 혹시라도 낼 첫배를 타고 올지도 모를 그녀를 위해 대화를 연습한다.  “오랜만이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말이 떠난 자리는 언제나 공허하다. 


  바닷가에 크고 예쁜 새 한 마리. 다리를 다친 공작새 한 마리. 외삼촌은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눈이 예쁜 열아홉 살 처녀는 피아노를 치고 단지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올까?’ 오늘 우도의 하늘을 맑다. 배가 들어오기 좋은 날씨다.

  시나리오가 잘 써지 않을 때 해결책은 오래된 집, 나무로 된 문지방을 갉아와서 그 가루를 먹으면 글이 술술 써진다고 열아홉 처녀가 비법이라 알려줬다. 오래된 집 나무 문지방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기가 쌓여있기 때문이라고.


  탱고 추는 여자. 그 민박집 처녀는 대학에 가서 탱고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우도의 바람을 파트너 삼아 탱고를 추는 그녀가  문득

  “부탁이 있어요. 탱고 한 번만 같이 춰요.”

탱고의 리듬. 나는 탱고의 리듬을 생각한다. 탱고는 어설픈 내 안의 감성을 일깨운다.

  “탱고는 원래 남성적인 춤이에요. 남자가 리드하는 춤이죠.” 

손을 맞잡은 그녀가 나직하게 말한다. 

   어젯밤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의 탱고. 춤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놓았다. 뜨거운 춤 탱고는 둘 사이의 벽을 녹여버렸다. 오늘 그녀는 돌담을 쌓고 있다. 돌담을 사이에 둔 그와 그녀는 돌조각으로 구멍 난 돌담들을 메운다. 돌담 사이사이 두 사람이 마주 볼 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돌로 가리고 있다.


  삼촌은 하릴없이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린다.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해변을 따라 가방을 든 누군가가 걸어온다. 느린 걸음, 해풍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던 삼촌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쫓는다, 아내의 귀환. 아내는 말없이 삼촌에게 다가가고 삼촌은 아무 말없이 그 여인을 안는다. 다른 사랑을 쫓아 뭍으로 훌쩍 떠난 아내의 소리 없는 귀환이다. 마주 섬. 이제야 삼촌은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았다.


  섬에서의 불꽃놀이. 우도에서의 마지막 밤 

  “이제 낼 첫 배로 떠나야 해요.”

  떠남은 늘 아쉬움이다. 푸른 깃털과도 같은 갈망하는 공작새 눈을 지닌 19살 그녀는 공작새를 놓아주고 그는 그 시간 제주발 배를 탄다. 그날따라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샛노란 우산 아래, 쪼그리고 앉은 그녀. 비는 바닥에 무수한 동심원을 그린다. 누군가는 배에서 내리고 누군가는 그 배를 탄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노란 비옷의 그녀의 빰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것이 흘러내린다. 

   언어를 되찾은 삼촌은 오토바이를 타고 와 흠뻑 비에 젖은 그녀를 태운다. 샛노란 비옷을 입은 그녀가 삼촌의 등에 매미처럼 달라붙어있다. 비에 젖은 시골길, 부두를 향해 달리는 오토바이. 사랑을 찾아 달린다.  배가 이미 떠나고 있다.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년 9. 9일 오후 2시 종묘에서 만나요.”

  그녀는 배를 향해 소리친다. 그는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허공을 가르는 언어들이 한 지점에서 서로 부딪친다. 파도는 그들의 언어만은 결코 삼키지 않는다. 이제 그는 우도에서 옛사랑을 지우고 새 사랑을 얻었다. 오래된 집 문지방 탓인지 그는 서울에 돌아와 두 번째 시나리오를 막힘없이 해결했다. 밀물이 들이치면 길은 사라지고 바다가 되는 곳. 그녀는 푸른 공작 깃을 머리에 꽂고 탱고를 춘다.


   종묘. 그날은 날씨가 꽤 맑았다.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햇살 고운 날 샛노란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이 선생님 뒤를 뾰뾰뾰 따라간다. 기다림은 내게 익숙함이다. 이제 기다림은 내게 문지방에 쌓인 낡은 이야기들과 같은 것이다.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아직 오지 않는다. 2시가 지난 지 한참이다. 서서히 돌아서야 할까?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만족하고 말이다.  그녀가 달려온다. 저 멀리서 분홍 스커트가 그녀보다 먼저 바람에 흩날린다. 종묘의 푸른 숲 사이로 공작 깃처럼 가볍게 스무 살 그녀가 달려온다. 멀리서 손을 흔든다. 손보다 눈이 먼저 반응한다. 그들의 사랑은 봄볕처럼 해피엔딩이다.     


  10년 뒤 그곳에서 만나요. 한 때 젊은 청춘들이 즐겨하던 사랑의 풍속이기도 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요,’ ‘우체국 앞 00 카페 창가 쪽 세 번째 자리’ ..... 지금과는 많이 다른 아날로그적 방식이다.

   시내에 ‘베토벤’이란 고전 음악실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햇살이 잘 드는 2층. 벽면은 화이트였고, 그곳에 가면 커피와 함께 베토벤의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었다. 베토벤 감상실 벽에 그려진  낙서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 00 다녀감, 00과 만난 지 100일. 00아 사랑해. 00 기다리다 먼저 감.....” 무수한 낙서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여기 남겨진 사랑들은 아직도 유효할까?  마음이 건천이 된 날 베토벤 고전 음악감상실에 들러 커피 한잔과 빨려 드는 선율에 몸을 맡기고 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곤 하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베토벤 고전음악 감상실... 머릿속에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10년 뒤 만나요.‘ 나는  왜 이런 약속을 하지 못했을까? 수많은 인연들을 거쳐 왔으면서 저마다 문지방에 내려앉을 듯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왔으면서도 왜 이런 약속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오래전 추억의 한 부분인 c. 그의 부모님은 과수원을 한다고 했었다. 지금쯤 과수원에 배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c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하였을까? 고전 음악실을 드나들던 시절의 인연. 어정쩡한 이별을 하느니 차라리 10년 뒤 언젠가를 이야기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10년은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이기도 하다. 10년은  10번의 봄, 10번의 여름, 10번의 가을, 10번의 겨울을 겪는 것이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절절한 기다림도 간절함도 사랑도 모두 희석되어버릴 것이다. 괜찮다. 10년 뒤 c와의 만남이 단순한 친구사이 임을 확인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한 번은 다시 만났어야 했다는 것을 영화 ‘깃’을 보며 생각한다.


  ‘10년 뒤 그 날 그곳에서 우리 만나요.’

10년 뒤 만날 누군가를 기약하는 일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일상은 분주하다. 속도 사회에서 10년이란... 아득한 시간이다. 10년 뒤 언젠가를 기약하는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도...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아 ‘우도’라는데  실제 '우도'는 영화만큼은 아름답지 않았다. 기대를 많이 해서 일수도 있지만. 검은 돌담과 샛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우도의 모습. 

그곳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 려원 


이전 04화 살다 보면그럴 때가 있지 않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