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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 혼돈의 이름 '가버나움'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 나딘 라바키 감독 영화

기적과 혼돈의 이름 가버나움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영화 '가버나움'의 첫 대사다.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근처 마을 이름이면서 ‘기적과 혼돈’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품고 있는 제목이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은 "어떤 이유로든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한 소년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설령 영화가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진 않겠느냐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칼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갇힌 12살 소년 자인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신분증도 없고,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자인. 법정에 선 자인에게 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판사가 묻자 자인이 대답한다.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그들이니까요.’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이 담아낸 베이루트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참담하다.  124분의 상영시간 내내 자인 알 라피아의 동선에서 단 한 번도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아동 학대. 조혼. 불법 체류자. 난민들의 삶. 그 모든 것이 응축된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최소한 일지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실감하게 된다.


칸 영화제 역사상 최장 15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영화이기도 하다. 

2019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관객상(나딘 라바키) 

2018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감독상(나딘 라바키)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각본상(나딘 라바키 외 3명) 리즈 국제영화제 공식부문 관객상(나딘 라바키) 상파울루 국제영화제 관객상-국제 영화(나딘 라바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나딘 라바키)       


   잡일을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자인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부모에게 말하지만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이라 일축하고 어머니는 학교에 다니면 얻어올 생활용품 생각을 먼저 한다. 사하르와 자인은 사실 출생 신고조차 안 된 투명인간이었다.

   11살 여동생 사하르의 죽음에 분노한 12살 소년 자인이 슈퍼 주인을 살해하려 했던 충격적인 사건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재판장에서 자인에게 “당신이 사람을 죽이려 한 게 맞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자인은 

“저는 사람을 죽이려 한 게 아니라 개새끼를 죽이려 했다.”라고 대답한다. 

판사는 한 번 더 묻는다. 

자인은 다시 또렷하게 “사람이 아니라 개새끼요.”라고 대답한다.


   유난히도 자신을 잘 따르던 여동생 사하르가 나이 많은 슈퍼 주인 아사드에게 팔려가듯 결혼을 하고 무리한 성관계를 지속하다 11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과다 출혈로 숨진 것에 대해 자인은 분노한다. 게다가 교도소로 면회 온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뱃속에 또 다른 아이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며 태어날 아이에게 ‘사하르’라는 이름을 지을 거라는 말에 절망한다. 태어나는 아기가 사하르가 된다 해도 이미 세상을 떠난 사하르를 대체할 수 없다. 


  에티오피아 출신 라힐은 불법체류자로 아들 요나스를 화장실에 숨긴 채 몰래 돌보며 힘든 삶을 살아간다. 집을 나와 갈 곳 없는 자인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이 일하러 가는 동안 요나스를 돌보게 한다. 체류기간 동안 사용할 위조 체류증을 만들기 위해 시장에 갔다가 체포되어 수감된 라힐. 며칠을 기다려도 라힐이 돌아오지 않자 자인은 요나스를 돌보기 위해 집안 식기를 팔거나 약품으로 마약 주스를 제조하여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더 이상 요나스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자인은 위조 체류증을 만들어 주는 상인에게 요나스를 넘겨주며 눈물 흘린다.


  무책임한 자인의 부모. 아이를 낳기만 할 뿐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다. 동물 우리 같이 좁은 집에서 아이들은 잡일을 하며 자라며 부모들은 자신들은 열심히 살고 싶으나 세상이 자신들을 가난하게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살아간다. 요나스를 정성을 다해 키우고 싶지만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키울 수 없었던 라힐과 대조적이다. 자인이 고소한 것은 이토록 아프기만 한 세상에 자기를 태어나게 한 부모였지만 크게 보면 출생 신고조차 안 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모든 현실을 고소한 것이 아니었을까.


  배우들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는데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서인지 유명 배우들보다 더 실감 난다는 평을 받았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시리아 난민 소년이었고,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 잠은 거리에서 껌 파는 소녀였다.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 로우는 실제 불법체류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자인과 하이타는 실제로 합법적 서류가 없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나 이 영화를 계기로 그 존재를 알리게 되었고 유엔 난민기구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영화 제작진은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영화다. 이제 겨우 12살인데 세상을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자인의 허무한 눈, 무심한 표정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살아가는 게 다들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커다란 냄비를 수레처럼 개조하여 그 안에 어린 요나스를 태우고 돌아오지 않는 라힐을 찾아 나선 자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을 뱉는 것조차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2살 자인이 바라보는 삶은 신발보다 더러운 개똥 같은 것이다.

“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증명사진을 찍는 자인이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아름답고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불러오는 영화. 가버나움은 그 제목처럼 ‘기적과 혼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분명했다. 자인은 감옥에 갇힌 라힐이 아들 요나스를 극적으로 만나는 ‘기적’ 그리고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던 자신이 ‘법적으로 존재하는 아이’가 되는 기적을 경험한다. 그러나 ‘혼돈’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혼돈은 기적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기적은 혼돈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려원     


* 참고 : 성경에 언급된 가버나움(카파르나움)

카파르나움(כְּפַר נַחוּם, 가버나움,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고장(마태 9,1), 예수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1)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의 공생활과 밀접한 곳이다. '나훔의 동네'라는 뜻이 있다. 당시 인구수는 1,500명이었고 이곳에서 예수님은 첫 제자들인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다.

크파르나훔은 어느 곳보다도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 치유, 죽었던 야이로의 딸 소생, 망령 들린 자의 치유, 중풍병자를 치유시키셨으며), 고관의 아들을 낳게 하신 기적, 이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이곳 크파르나훔에서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시고, 악마에게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시키시고, 기도하시는 일상을 보내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을 보고도 크파르나훔 사람들은 회개하는데 더디어 예수님에게 크게 분노하셨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 

이 마을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1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였다가 제1차 십자군 이전 어느 시점에서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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