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듣기 위해 태어났어.

앙   / * 가와세 나오미 감독, 키키 키린 주연(2015. 9월 상영)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가게 주인 센타로에게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찾아온다. ‘마음을 담아’ 만든 도쿠에 할머니의 단팥 덕에 도라야키는 날로 인기를 얻고 센타로의 얼굴도 밝아진다. 하지만 외로운 단골 소녀 와카나의 말 한마디로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센타로의 가게 앞에는 커다란 왕벚나무, 만개한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간혹 센타로가 구운 도라야키 사이에 벚꽃 잎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벚꽃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네. 참 곱다. 그래 모두들 안녕”

도쿠에 할머니가 벚나무의 벚꽃들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센타로의 가게로 찾아와 200엔만 주어도 좋으니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지만 연로한 할머니를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채용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다시 찾아오지만 또 거절당하는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가 직접 만든 팥소의 맛을 본 센타로는 팥소의 놀라운 맛에 감격하고 마침내 할머니에게 정중히 아르바이트를 해주시기를 청하고 할머니와 센타로는 이른 새벽부터 제대로 된 팥소를 만든다.

 “제대로 모셔야 해.”

 “누구를요? 손님요?”

 “아니, 팥들 말이야. 힘들게 밭에서 여기까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왔을 테니.”

 “익은 팥들은 으깨지니까 조심히 살살 다뤄야 해. 사알--- 살 주걱을 수직으로 세워서.” “이제 당을 넣을 차례야. 그리고 기다려야 해.”

 “얼마 나요?”

 “ 두 시간” 

 “네에? 두 시간이 나요? 그렇게 오래요.”

 “팥이 당과 친해져야 하는 시간이야. 팥과 당이 서로를 알아야 하거든. 서로 익숙해져야 하지.”

 “자네는 단 것을 싫어한다면서 왜 도라야키는 굽는가? 술을 좋아하면 술집을 해야지? 내 말은 자네가 하고 싶을 하면서 살라는 말이야. 새처럼 자유롭게.”

 “난 항상 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네. 팥이 본 하늘. 비 오는 날, 맑은 날, 바람 부는 날, 팥이 거쳐 온 긴 여행 이야길 듣는다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담고 있어, 해의 언어, 바람의 언어, 나무의 언어, 꽃의 언어.”     


  할머니 굽은 손의 정체가 한센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와카나로 인해 우연히 알려지자 문전성시를 이루던 센타로의 가게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다. 도쿠에 할머니는 쓸쓸히 짐을 챙기고 센타로는 떠나는 할머니를 잡지 못한다. 와카나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실수로 한 말 때문에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자책한다. 와카나는 아파트에서 카나리아 ‘마비’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할머니에게 맡길 생각을 한다. 카나리아 ‘마비’를 잘 돌봐주겠다는 도쿠에 할머니와 달님 그리고 와카구 사이의 약속. 하지만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센타로의 가게에도 변화가 생겨 더 이상 도라야키를 만들 수 없게 된다. 햇살 고운 날  아침 센타로는 와카나와 함께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 벚꽃 흐드러진 그 봄날이었지. 엄마는 밤새 하얀 무명천을 떠다가 새하얀 블라우스를 만들었지. 하지만 난 그 옷을 입지 못했어. 이 곳에서는 개인의 옷을 입을 수 없거든......... 산책 중  달콤한 향기에 끌려 당신의 가게 앞까지 나도 모르게 갔지 그런데 당신은 너무도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어. 슬픈 눈. 뭐가 그리 슬픈지. 그건 바로 예전의 내 눈이기도 했지. 평생 이 곳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품어온 눈빛. 어쩌면 도라야키의 달콤한 향기보다도 당신의 눈빛에 끌려 나도 모르게 당신의 가게 앞까지 왔을 거야. 만일 내 아이가 태어났다면 아마도 당신 또래일 거야. 보름달이 내게 속삭여주었지. 네가 돌봐주어야 한다고. ”     

“도쿠에는 떠났어. 사흘 전에. 도쿠에는 왕벚나무가 되었어. 도쿠에는 벚나무를 사랑했으니.”


  도쿠에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접한 센타로와 와카나는 할머니를 마음으로만 보고 돌아오는 날 왕벚나무들은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가 새장에서 놓아줘버린 노란색 카나리아 마비도 따사로운 햇살 아래 어디선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듣기 위해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엇이 되지 못해도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 벚꽃 나무 아래서 마음을 담은 제대로 된 도라야키를 파는 센타로. 

“도라야키 왔어요. 도라야키 사세요.”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벚꽃들이 손을 흔들며 일제히 답을 한다.

  공원의 햇살이 벚꽃 잎 사이로 부서진다.

     


오래전 보았던 일본 영화 ‘앙'을 반추한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으로 불편한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일본 영화와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섬나라 특성을 그대로 살린 일본의 문화, 한 번은 꼭 가봐야지 했던 교토. 우연히 가게 되었지만 금방 다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짧은 일정을 마무리해버렸는데 코로나로 당분간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벚꽃이 한창 일 때 꼭 다시 와서  경쾌한 게다 소리를 들어보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이제 생각으로만 남았다.

세상을 떠난 키키 기린. 그녀는 일본의 국민배우다. 배우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외모,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처럼 친숙한 이미지를 지녔다. 그럼에도 그녀의 잔잔한 눈빛에는 열정과 카리스마가 녹아있었다.

‘앙’ 사소한 팥 앙금 하나에도 정성을 다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지극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진리다. 들판의 시간들. 세상의 무엇이든 자기만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 말을 하든 말을 하지 않든, 들을 수 있든 들을 수 없든. 저마다 언어를 품고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듣기 위해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엇이 되지 못해도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도쿠에 할머니, 키키 기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려원          


이전 07화  carpe diem! 죽은 시인의 사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