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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향해 우리는 다가가야 한다.

불행이란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화와 수용/ 영화 <다가오는 것들

다가오는 것들 : things to come/ 2016 개봉작 프랑스

음악이란 듣기와 보기를 같이 하는 것이다.     


“신들의 국가가 있다면 그들은 민주적으로 뭉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반드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인권 선언의 모태가 되었어요.

“문제는 진리 그 자체라기보다는 진리를 확립하는 기준이다.”

“선생님 예술의 진정성은 시간이 결정한다고 하였는데 만일 그 시간의 결정이 잘못된 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고등학교 철학교사 나탈리. 사르코지의 정책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데모. 

“적당히 위선적인 지식인들은 서명하고 약간의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으로 사회 정의 실현에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의미가 없다는 걸 선생님은 아셔야 해요”

“ 난 혁명을 원치 않는다. 난 학생 개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로 세상이 바뀌어지길 바랄 뿐이지. 테러와 같은 급진적인 물리력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지 않아.”

“바로 그 점에서 선생님의 생각과 행동은 별개라는 거예요. 생각은 오직 생각대로일 뿐.”

“아니야. 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 난 너를 가르치는 내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수업을 했지. 내 마음 알겠니?”     


  나탈리는 극심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수시로 119를 불러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얼마 안 되어 임종을 맞으셨을 때 나탈리는 고별사에서

“우리는 의혹과 질문은 신앙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보고 괴로워하는 세계/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를 품게 합니다. 신이 내게 보여주지 않으면 나는 부정으로 마음을 정하게 됩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다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신분도 나의 마음도 나의 의지도. 영원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결코 비싸지 않습니다. “라는 팡세의 구절을 인용한다.

  딸과 아들의 엄마, 유능하고 지적인 교사, 남편의 현명한 동반자인 그녀의 삶에 균열이 온 것은 남편에게 다른 여인이 생기면서부터다. 슈만과 브람스를 들으며 플라톤과 쇼펜하우어, 니체, 푸코를 논하던 부부.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는 남편의 말에  “당신은 평생 나를 사랑하기로 했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의 답은  “평생 사랑하겠다는 것은 결코 변함이 없다.”

 책꽂이에서 각자의 책을 챙기는데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이 보이지 않으니 잘 찾아놓았다가 다음에 전해주라는 남편의 쪽지가 붙어있다.   두 사람은  불행이란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바로 불행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탈리의 제자 피비 앵. 파비앵은 알프스 산자락 베르꼬흐(Vercors)로 들어가 공동 저작 활동을 하며 강의를 하며 글을 쓰며 보낸다. 남편, 아이들, 어머니도 떠나버린 홀가분한 그녀는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20년 동안 브람스와 슈만의 노래만을 듣고 살아온 나탈리에게 저항가수 ‘우니 거스리’의 노래는 새로움을 준다. 온전한 자유, 공동 노작과 글쓰기 토론의 공동체,

 “글은 저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읽는 자들의 것이기도 하지”

 “저자 개념의 정의를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 거지?”

파비앵과 공동체의 열띤 논쟁.... 쉬이 잠들지 못하는 파비앵. 검은 고양이 판도라를 파비앵에게 남겨주고 파리로 돌아오는 나탈리. 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 거리에 불빛이 환한데 혼자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마음은 스산하다. 문을 여니 어둠 속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하지만 나탈리는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 앞에서 돌려보내고 서둘러 자식들을 위해 성탄 음식을 준비한다. 아기 울음소리와 뒤섞인 웃음소리, 그리고 이야기 소리들. 

 


다가오는 것들....... 무엇이 다가오는 것일까? 나탈리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그리고 파비앵에게. 다가오는 것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희망이 곧 행복일 수 있다는 말처럼 그들은 '행복이라는 희망'을 '희망이라는 행복'을 품고 살아간다.  행복의 걸음은 더디고 현재 진행형이기를 바라는 행복은 때로 미래 시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발설할 수 없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랑을 품고 사는 나탈리와 파비앵.  파리와 산골마을을 오가는 제자와 스승.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무엇일까?     

  남편의 외도. 25년간 결혼 생활의 종지부. 식상하고 진부한 스토리일 듯싶지만 그럼에도 추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은 철학교사인 나탈리의 삶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탈리가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몸 부리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많은 이야기들을 감추고 있으며 삶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삶은 익숙한 것이면서도 낯선 것이다.  낯선 시작과 익숙한 반복.... 어쩌면 삶은 유행 지난 낡은 코트에 최신 머플러를 두르는 것이거나 새로 산 코트에 오래된 머플러를 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 옷이면서도 익숙한 낡은 옷처럼 편안한 두 사람의 관계에 무언가 저벅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나탈리의 노래와 파비엥의 흥얼거림. 매 장면 등장하는 나무와 풀과 꽃들. 본능을 잃어버린 고양이 판도라가 쥐를 사냥할 정도로 본능을 회복해가는 장면도 나탈리와 파비앵이 스승과 제자로만 길들여진 그들의 관계에 머지않아 본능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리라는 기대감을 준다. 아름다운 것.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설렘이며 희망이며 본능의 회복이며 진실이며 진정한 이해며 배려며 소통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보여주듯 나탈리 주위에도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이 다가온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딸의 아이가 태어나고 파비앵 농장에는 당나귀가 새끼를 낳는다. 새로 태어난 손자에게 나지막이 <맑은 시냇물가>를 불러주는 나탈리는 돌봄 노동을 통해 만남을 이어가고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모든 것이 떠나갈 때 다가오는 것들은 분명 있다. 상실의 시대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내 곁의 익숙한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 듬성듬성 삶의 구멍을 낼 때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일까?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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