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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들판 한가운데 서있다

잿빛 하늘 아래 두발로 직립해있는 고독한 남자처럼.

11월의 들판에 서다

어떤 명화를 우연히 보고선 작가와 작품명을 찾아보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할 때가 있다,

그 화가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가 아닐 때에는 더더욱 그 작품을 다시 찾기 어렵다.

눈에 띄지도 않을 법한 그 작품을 완성한 화가의 마음이 되어본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화가...

스산한 그림에서 나는 왜 이 그림이 11월에 그려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일까?

그림 속 풍경을 보고 11월이라 단언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이라는 계절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지금’ 내가 11월의 한 복판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다 갑자기 멈췄다.

그곳은 유명한 단풍나무 길도, 메타세콰이아 길도 아니었다. 허름한 농가 몇 채와 아무도 물건을 사러 오지 않을 것 같은 구멍가게가 있는 곳. 버스가 멈추긴 하는 것 같은데 자주 오지는 않을 것 같은 그곳에서 나는 기울어진 전봇대와 두 그루의 나목...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들의 춤에 끌려 사진을 찍는다.

20201119_072218.jpg

새들은 두 그루 나무 사이로 편대를 지어 이동한다.

기울어진 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전봇대...

비가 약간씩 내리는 11월의 하늘은 잿빛이다. 어디선가 큰 바람이 비를 몰고 달려올 것 같은 그런 하늘이다.

문득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밀밭도 아니거니와 까마귀도 없다

단지 들판에 흔들리는 두 그루의 나목과 풀들...

나는 나무와 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뿐

불어오는 바람 앞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흔들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발로 직립해 있는 고독한 남자를 연상시키는 11월.

11월이 들판 한가운데 나목으로 서서 코트 깃을 휘날리고 있다

빈 들에 서서...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그곳에서

11월은 여전히 직립한 체로 나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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