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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Happy Day 반어와 역설

사라져 가는 곳, 허물어지는 곳, 그래도 은행나무들은 여전히 푸르다

오 해피데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곳... 태양열 설비공사를 한 도서관만 제하고 인근 낙후된 곳은 모두 재개발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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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반납하러 도서관 앞 좁은 도로를 달린다. 옹기종기 늘어서 있던 가게들에 모두 x자 청 테이프가 붙어있다. 도로 통행 제한 안내 공지가 붙어있고 성미 급한 포클레인의 손끝에서 허름한 건물들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무엇이든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의 탄생은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곳도 흔적 없이 철거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다.


갑자기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작 소설 생각이 난다. 누군가는 그대로 어딘가로 흩어지게 될 운명... 또 누군가는 프리미엄을 붙여 팔고 또 누군가는 새 집을 기쁜 마음으로 마련하고... 또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울부짖고... 또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돌아오고..

그의 연작 소설 중 인상적인 또 다른 작품은 ' 뫼비우스의 띠'다. 부동산 업자의 죽음과 꼽추와 앉은뱅이의 저항...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을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 지어 구상한 작품이다. 자신의 집이 개발업자의 도끼 앞에 맥없이 허물어질 때 앉은뱅이 가족과 꼽추 가족은 철판에 콩을 구워 먹고 있다. 이런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태연히..

1970년대 개발, 산업화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들어맞는다. 2021년의 현재나 1970년대나 개발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것, 전복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공통점을 품고 있다.


유독 이 좁은 골목엔 다문화 가족이 많이 살았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면 서툰 한국말을 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인은 한국어와 자기 나라 모국어를 반반 섞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고국을 떠나 어딘가 다른 나라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간다는 건 버거운 일일 것이다. 언어는 그 모든 생활의 바탕이 될 테니까... 언어의 중요성을 특히나 실감하게 되는 것은 해외여행을 갈 때이다.

영어든 일본어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을 구사할 수 있어야 세련된 대화가 가능하다. 아주 기본적인 말조차 더듬더듬하면서 상대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언어가 갖는 힘... 언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곤 했다. 아무리 가방끈이 길어도 단어 몇 개를 대충 이어서 문법에도 맞지 않는 대화를 억지로 만들고 있는 모습은... 민망하고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들이 모여 살던 골목... 녹슨 함석 대문에 x자가 붙어있다. 접근 금지의 언어다.

차를 멈추고 내려가 낮은 담벼락에 고개를 내밀고 안을 들여다본다.

벽지는 반쯤 뜯어지고... 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빛바랜 빨래집게들이 빨랫줄에 걸려있다. 인적 끊긴 골목... 어디로 옮겨갔을까..... 철없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그녀들이 모두 떠난 골목... 은행나무들은 이제 온통 초록빛이다. 지난가을 물결치던 황금빛이 초록의 바다로 바뀌었다. 나무들은 머지않아 벌어질 자신들의 운명을 알까? 올 가을 열매 맺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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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한 때 '마을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오!! 해피 데이라니.... 무지개가 그려진 담벼락... 모두 떠나고 없는 빈 집에 oh! happy day!

대문엔 아무 말 못 하게 청 테이프가 붙어있는데 담벼락은 혼자 "오! 해피데이" 라 외치고 있다.

역설인가 반어인가 한참을 생각한다.

돌아보면 삶이 "오! 해피데이"였던 적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기쁨을 만끽하는 데는 인색하고 슬픔과 고통에는 예민하다. 기쁨은 격렬하나 짧고, 고통은 역시 격렬하나 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담벼락에 새겨진 오! 해피데이...

머지않아 나무들의 몸통이 잘려나가고, 땅 속 깊숙이 콘크리트 건물이 심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더 험한 곳으로 떠났다. 누군가는 가게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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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데이........ 할 말을 잃고 만다.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그곳... 어쩌면 곧 이 도로마저 개발을 위해 진입이 금지될 것이다.

오래된 은행나무 길의 마지막 증언자로서 나는 오! 해피데이 담벼락을 향해 찰칵찰칵...... 공허한 짓을 하고 있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쩌면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들도.... 이 은행나무 길처럼... 오! 해피데이 담벼락처럼...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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