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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리고 34일째
나는 기다림에 대해 생각한다

5월은 벌써 초록빛 상자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 4 월 32일 >


내일 도착할 선물을 오늘 기다린다 아침이 오는 방향으로 누워있으면

귓속으로 초록 물이 차오른다


기다리는 자세에 따라 선물은 부풀거나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못쓰게 되거나 루머가 되기도 한다


어떤 선장은 먼 항해를 시작할 때 우울한 기운이 도는 선원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


나의 연혁은 나쁜 예감과 자주 입을 맞춘다 내 안에 다리를 저는
행려병자 같은 신이 내 기도를 받아먹고살고 있다


5월은 서른한 개의 초록빛 상자를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가도 가도 4월

- 김나영-


시인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산문을 쓰는 데 익숙해지면 함축성 있는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시와 수필과 소설, 평론.... 장르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이들도 많지만...

어느 순간 나는 시 쓰기를 중단해버렸다. 시를 시작한 것은 짧아서였는데 쓰다 보니 짧은 글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달력을 보며 5.3이라는 숫자 앞에 김 나영 시인의 셈법대로라면 4월 34일 째다

4월까지는 2021년의 상반기라는 느낌이 드는데 달력을 5월로 넘기는 순간.... 올해도 절반을 향해간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내일 도착할 선물을 오늘 기다리는 사람들... 사람들은 누구나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무엇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택배든, 선물이든, 합격이든, 당선이든.... 사람이든.

저마다의 무언가를, 저마다의 누군가를 쉴 새 없이 기다리다가 생을 보낸다. 생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기다리지 않아도 될까.. 그때는 아마도 다가올 이별과 죽음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다 평생을 소비한다.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기다림에 생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기다리는 자세에 따라 내게 오는 선물은 달라진다. 원래 오려던 것에서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부풀려진다. 심지어 오지도 않고 루머로만 남는다.. 시인이 말한 기다림의 자세. 5월의 선물을 받아들이려면 4월을 잘 보냈어야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5월 그리고 삼일째다. 유독 빨간 날이 많은 달이지만 작년에 이어 그다지 들뜨지는 않는다. 5월이라는 계절의 아름다움은 여전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 불안감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나는 어떤 기다림의 자세로 4월을 보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 기다림의 자세가 복기되지 않는다.

분명 무언가를 했다. 하루 24시간을 정신없이 허둥거리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별다른 기억에 남는 일이 없는 것은 늘 같은 일상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반복... 나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대로 살아보려고 했으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선장은 먼 항해를 시작할 때 우울한 기운이 도는 선원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항해.... 변화무쌍한 바다에 기쁘고 활기찬 기운의 선원을 데리고 가도 부족할 텐데... 우울한 기운이 도는 선원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내 삶에서 나는 선장이기도 하고 선원이기도 하다. 우울한 기운을 지닌 채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지쳐버린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삶이라는 항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제대로 된 기다림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4월 34일째..... 달력은 이미 서른한 개의 초록빛 상자를 정신없이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서른한 개에서 이미 3개는 개봉되었다.

연두와 초록이 뒤섞인 거리... 이팝나무 새하얀 꽃은 눈처럼 곱다.

마스크를 쓴 일련의 사람들이 활기차게 공원을 향해 걷고 있다.

내일 도착할 선물을 위해 오늘 제대로 된 '기다림의 자세'를 고민해보아야겠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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