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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빠져 죽지 않기

사실은 책에 빠져 죽고 있는 중이다.

책꽂이 앞을 서성인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책꽂이 앞에서 나는 지독한 독서가이면서 서평가인 로자 이현우의 ‘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펼쳐 든다. 

책에 빠져 죽는다면 행복한 죽음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자유롭게 죽음의 방법을 선택하라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는 잠들어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상태를 최고로 자연스러운 죽음의 방법이라 생각하겠지만) 책에 빠져 죽거나, 책을 보다가 죽거나, 책에 질식해 죽는 방법을 택할지도......

이현우 서평가가 ‘책에 빠져 죽지 않기’라고 제목을 정한 것만 보아도 그 또한 ‘책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감’을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다.      


책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아마도 유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책꽂이가 부족해 장롱 위에까지 자리 잡은 책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망막에 새겨진 것은  줄지어 늘어선 책들이었고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도 책들이었다. 아버지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 도서관은 유년의 놀이터였다. 책꽂이 사이로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나는 책과 책 사이에서 진종일 놀았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그것들을 다 소장한다는 것은 집이 도서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도서관에서 신간도서를 빌려 오는 날은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 최대한 3주로 반납일을 맞추고서도 읽어야 할 책들은  왜 그리 많은지.... 나는 날마다  행복한 활자 중독을 앓고 있다.     


인류 최대의 발명품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이란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다. 서점에 새로 나온 책들이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 사람들은 책을 펼쳐본다. 어떤 책은 외면당하고 어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또한 책의 운명일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가슴에 꽂히는 책들도 있고 베스트셀러라 이름 붙었지만 생각보다 와 닿지 않는 책들도 있다. 책도 일종의 음식이니...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책 때문에 죽을 뻔했다... 책꽂이에서 보지 않는 책, 오래된 책을 골라내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아니다. 누군가 선물로 주었으나 코드가 맞지 않아 대충 보고 꽂아놓은 책도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지만 수업용으로 구입한 책들도 있다. 유난히 애착이 가는 책들은 아무리 속지가 누렇게 변하고 표지가 지저분해져도 버릴 수가 없다. 20대 서점에서 한두권 사모은 책들은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렸지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책에 스민 젊은 날의 기억 때문이다.

책 페이지의 한 귀퉁이 도그 지어(Dog' ear)가 있는 부분을 다시 펼쳐서 읽어본다.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많은 시간들이 쌓여있다. 무엇이 그 시절의 나를 그 페이지에 멈추게 하였을지 다시 생각해본다.    

 


이사때문에 책들의 살생부를 작성해야 했다. 책꽂이에서 어떤 오래된 책들을 끄집어 내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손 끝에 붙잡혀 나온 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마음 약해져 다시 책꽂이에 꽂아 넣고 만다.

책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은 어떤 기억이 있고, 이 책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고 이 책은 별로 관심은 없지만 책을 전해준 이의 마음이 얹혀있고 또 이 책은 낡았지만 어딘가에 나의 눈물 자국이, 또 어딘가에는 웃음소리가, 또 어딘가에는 수없이 많은 손 때가  묻어 있어서 버릴 수가 없다.


버리는 일.....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여전히 숙제처럼 어렵다.

책뿐만 아니라 신문 한 장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종이는 쉽게 버리는데 종이 위에 활자화된 무언가가 찍혀있으면 버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책들..... 눈 앞에 책들이 있다. 옆에도 책들이 드러누워있다. 책꽂이의 책들은 한 줄로 늘어서지 못하고 두 줄로 서있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올 텐데 그때 나의 책들은 어떻게 될까....

버리지 못하는 자의 변명.... 책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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