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중함과 '없어보임'에 대한 존중
스웨덴계 핀란드 여성 작가 토베 얀손이 직접 그리고 글을 쓰며 탄생시킨 무민은 1945년 처음 선보인 이래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핀란드의 휴양도시 난탈리에는 무민으로 가득 채워진 ‘무민월드’가 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 속에 등장하는 트롤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무민’이라는 캐릭터들 창조한 토베 얀손은 무민과 그의 가족, 친구들의 모험담을 동화로 만들어냈다. 전 9권에 달하는 동화가 인기를 끌자, 만화, 그림책,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며 대중에 점점 더 친숙해졌다.
귀엽고 호기심이 넘치는 무민은 동화 속에서 끝없는 모험을 한다. 모험이 끝나고 무민 골짜기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따뜻한 음식과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민> 시리즈 전반에 깔린 정서는 가족과 평온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함이다. <무민>이 등장한 1945년은 소련과 핀란드가 전쟁을 끝낸 직후였는데 토베 얀손은 모두를 따뜻하게 안아줄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무민> 시리즈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무민의 핵심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무민> 시리즈가 7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국적불문 없이 오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관대함 때문이다. 서로 모습과 종족이 달라도, 단점이 있더라도 기꺼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된다. 이들에게 단점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민족주의가 강요되던 시절 다른 이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토베 얀손의 생각이 <무민>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관련 인물
아빠 무민 : 항상 지팡이를 지니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무민의 아빠. 무민만큼이나 모험심이 넘쳐서 종종 <무민> 시리즈 모험담의 주인공이 된다. 모험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여유를 즐기는 캐릭터다.
엄마 무민 : 무민과 그의 친구들이 사는 무민 골짜기의 지혜의 상징으로 통한다. 관대함을 바탕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리더십까지 갖춘 캐릭터.
스너프킨 : 무민의 절친한 친구로 허수아비를 닮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방랑자 기질이 다분하여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여행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스노크 : 무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트롤이 아닌 스노크라는 종족이다. 그는 스노크 아가씨의 오빠이며 기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스노크 아가씨 : 스노크의 여동생. 스노크 족이기 때문에 역시나 기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치장하는 것을 좋아해 머리에는 꽃장식을 발에는 발찌를 하고 있다. 무민의 여자 친구로 통하며 모험심이 넘치는 무민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무민 캐릭터가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하얀 하마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이다. 통통한 몸에 선해 보이는 눈빛, 새하얀 몸, 적의를 품지 않는, 품을 수 없는 캐릭터다. 무민은 하마처럼 보이지만 꼭 하마인 것은 아니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디자인, 치장하지 않은 담백함, 백설기 같은 느낌을 주는 무민, 무민,,, MOOMIN..
무민의 무는 무(無)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없음’이 연상되는 것은 무민들이 지니고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민은 없어 보인다. 말 그대로 이기심도 탐욕도 편 가르기도 질투도 분노도 사악한 감정도. 상대에 대한 편견도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없어 보인다’는 말을 싫어한다. ‘없어 보인다’는 말은 경제적인 의미로 주로 해석되다 보니 '없어 보인다'는 곧 '곤궁하다.' '빈티 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때문이다.
‘없어 보이는 사람’..... 이기심, 탐욕, 분노, 시기심, 편견이나 자기 비하... 그런 것들이 없어 보인다면 정말 제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토베 얀손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고안한 것도 ‘다양성’을 인정하자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성의 인정.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 모두가 같은 지향점을 가지며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미타큐예 오야신( mitacuye oyasin)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우리는 동족이다 “라는 뜻의 다코타족 인디언 인사말이 있다.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다름’을 경계로 나눌 수 없음에도 우리는 분리, 분획에 익숙하다.
무민은 자신과 다른 종족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모두가 하나인 것. 나누지 않음. 경계를 짓거나 구분하지 않는 것. 무민에게 순혈주의나 민족주의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무민에게 '미타큐예 오야신'은 딱 들어맞는 인사말이다.
재개발 공고가 난 지역, 거대한 포클레인은 굉음을 울리며 낡은 건물들의 잔해를 치워내고 있다. 한때 누군가가 등을 대고 누워있었을 방바닥은 이미 회색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허물어진 담 안쪽으로 늘어진 빨랫줄에 주인 없는 빨래집게. 널어야 할 빨래 하나 없는 텅 빈 집안에 쓸모를 상실한 집게는 덧없어 보인다.
담벼락에 그려진 무민 가족 그림이 유난히 시선을 잡아끈다. 다문화 가족들이 유난히 많이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무민 캐릭터가 지닌 의미가 유난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실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설령 그곳을 지나더라도 벽에 그려진 벽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무민 가족이 그려진 벽도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스노크 아가씨를 가운데 두고 하트 화살이 그녀를 향한다. 아무 걱정 없이 웃고 있는 무민들.
우리에게 미래란 아무 일 없는 '일상'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미래는 엄청나게 좋은 일이 발생하는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상이 만들어낸 흔적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무민 가족들에게 미래란 곧 '오늘'을 사는 일이었을 것이며 그들에게 '오늘'이란 바로 신나는 '모험'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있어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고 '없어보이는' 것들을 존중하는 무민들...
그 벽화가 그려진 집안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옮겨갔을까?
x자로 접근 금지 테이프가 붙어있다. 경계지음. 나눔, 분리의 언어다.
어디론가 둥지를 옮긴 사람들. 오랫동안 그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무민 캐릭터...
무민 벽화 앞에 토끼풀이 만발하다. 무민들의 뜰처럼 보인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의 반복이야 말로 생의 축복임을 새삼 확인한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