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르비 대신 니샤!

신이 계시다면 니샤에게 스스로 자유를 찾을 기회를 주시기를


니샤는 수르비가 살지 못하는 삶의 대타인가...


한 때 여행 가고 싶은 나라 1 순위가 인도였던 적이 있다. 아마도 인도에 대해 쓴 류시화의 책들 때문일 것이다.

갠지스강. 생과 사가 공존하는 강. 그 강 어딘가에서 장작을 놓고 시신을 태우고 그 강 어디선가는 정화의 목욕을 하고 또 그 강 어디선가는 저녁을 지을 찬거리를 씻는다.

인도는 성과 속이 공존한다. 사실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속적인 것 가운데서도 성스러움이 존재할 수 있고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가장 추악한 세속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성과 속은 분리 불가능한 샴쌍둥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이후 인도는 유난히 자주 기사화되는 듯하다. 코로나 사망자들을 강가에 버리거나 길가에 그대로 방치하여 들개가 뜯어먹는 뉴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관광객 집단 성폭행 뉴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 하라는 정부의 방침을 교묘히 이용해 전세기를 동원 비행기 안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나라도 인도다.

알 수 없는 나라다. 과학과 수학 강국, 인재, 철학자, 문학, 불교의 나라로 알려진 인도. 성폭행 범죄, 빈부 격차, 강도, 소유물과 같은 여성의 지위... 어디까지가 인도의 얼굴일까



오늘 아침 기사를 검색하다 당황스러운 기사에 시선이 멈춘다.

27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한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 도중 신부 수르비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신부의 여동생 니샤가 대신 결혼식을 했다는 기사다.

<보도에 따르면 수르비라는 여성이 신랑 망게시 쿠르마와 전통 화환을 교환하는 예식을 진행하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곧바로 동네 의사가 결혼식장으로 출동했지만, 수르비는 숨을 거뒀다. 양측 가족은 결혼식을 중단하는 대신 신부를 수르비의 여동생 니샤로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수르비의 시신은 결혼식 동안 다른 방에 옮겨졌다.

"다른 방에 수르비의 시체가 있었고, 또 다른 방에서는 니샤가 결혼을 준비 중이었는데 믿기 어려웠다"라고 회상했다.

신부 측 가족들은 결혼 지참금을 기대했고, 신랑 측 가족들은 결혼은 했으나 신부 없이 돌아왔다는 오명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신부 교체에 동의한 것이다.

결혼식을 마친 뒤에 수르비를 추모하는 의식이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수르비의 삼촌은 "우리에게는 너무 힘든 결정이었다"면서 "슬픔과 행복, 이렇게 엇갈린 감정을 동시에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

/ 기사문 발체 인용


20210603_122742.jpg 동그란 원안의 여인이 얼떨결에 신부가 된 니샤

대체 결혼 이란 무엇인가? 인도에서 여인들은 어떤 존재 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다.

결혼을 대가로 받는 지참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신부 측 가족과, 결혼 당일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신랑 측 가족의 입장이 대리 신부를 이용한 결혼으로 결론지어졌다.

놀라운 일이다. 소나 양처럼... 번제에 쓰일 소나 양이 어떤 이유로 그 목적에 합당하지 않으면 다시 고르는 것처럼 결혼 식의 신부. 장차 누군가의 아내가 될 여자도 다시 끼워 넣으면 된다는 야만적인 사실이 현대 사회, 소위 문명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수르비의 대타가 된 니샤. 축복을 비는 예식이 올리고 얼떨결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기사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 언니 수르비 대신 니샤로 교체되었다”

교체.... 선수 교체, 물건이 교체.... 교체라는 말이 가슴을 후빈다.

다른 방에는 죽은 수르비의 시신이 놓여있다.

생과 사, 축복과 애도. 결혼식을 무사히 치른 후 수르비의 장례가 치러졌다고 한다


우리에게 결혼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 기사를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페미니즘적 발상보다 더 강렬하게 남는 질문

"우리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이다.

결혼 제도. 사랑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책임과 의무의 성격도 강하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 책임과 의무 또한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약속이 결혼 인지도 모르겠지만.

언니의 대타가 된 여동생의 결혼. 니샤는 아무런 사랑의 감정 없이 원래는 형부였을 어떤 남자의 아내가 되어 평생을 살아간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 보존의 역사적 사명을 띤 결혼인가. 지참금을 지키기 위한 희생인가, 언니의 동생이기 때문에 도리어 자연스럽다는 현실인가.


니샤의 자유 의지는 없었다. 누군가의 제안은 곧 집안과 집안 사이의 동의가 되었고 그것으로 니샤의 인생이 결정되었다. 결혼식 날 심장마비로 죽은 언니 수르비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니샤는 흔히 말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그날까지 살아갈 것이다.

니샤의 삶은 행복할 것인가?

니샤에게 필요한 것은 인도의 대문호 타고르의 ‘기도’가 아닐까.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주세요.

생의 싸움터에서 살아남을 스스로의 힘을,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실패에서도 신의 자비를 느끼게 하소서.


<기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 라빈드란나트 타고르 -

(영문)

Let me not pray to be sheltered from dangers

but to be fearless in facing them.


Let me not beg for the stilling of my pain

but for the heart to conquer it.

Let me not look for allies in life's battlefield

but to my own strength.


Let me not crave in anxious fear to be saved

but hope for the patience to win my freedom.

Grant me that 1 may not be a coward,

feeling your mercy in my success alone;

but let me find the grasp of your hand in my failure.



*참고자료 :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타고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났다. 출생과 사망 연도는 1861년 ~ 1941년이다. 타고르는 인도의 저명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 분위기 탓에 일찍부터 시를 쓰는 등 문학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타고르는 아내, 부친, 아들, 딸을 몇 년 사이에 잃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농민계몽을 위해 시작한 학교 및 공동체 사업도 재정난을 겪는 등 삶에서의 큰 아픔을 겪는다 타고르는 이러한 고통과 아픔, 울분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시집 한 권에 차곡차곡 쌓아 간다. 그리고 이 가운데 57편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서 우연한 기회에 해외에 알리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타고르의 대표작인 '기탄잘리'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뜻이며 전체 157편을 수록하여 1910년 출판되었고 이중 57편을 추려 1912년 영국에서 출판된다. 그 이듬해 타고르는 노벨문학상을 아시아 최초,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민Mo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