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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추함

옴베르토 에코의 탐구

미의 역사, 추의 역사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느냐,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보느냐.

그리스 시대 아름다움의 기준은 완벽. 이상. 비례, 균형에 있었다. 중세의 아름다움은 성과 속의 명료성, 위대한 영혼의 메아리라 칭하는 숭고미, 다가갈 수 없는 신비주의에 있었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수단이기도 하고 목적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의 아름다움.....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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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소비는 미에 집중되어있다. 소비는 주로 미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고 자본은 미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아름다운 것, 탁월한 것, 우월한 것, 귀한 것, 자랑스러운 것. 소비 중심 사회에서 아름다움이란 상업적인 가치다.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우리가 덧씌운 환영들을 보기 때문에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개인이 정한 기준들, 저마다의 기준들은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의 자가 된다.

<미에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이 있을 뿐이지만 추에는 수천 가지 유형이 있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과 아름다움의 유형은 한정적이지만 추하다고 느끼는 범주는 다양하다. 사람들에게 추하다고 인식되는 것은 치명적일 정도로 배타적인 느낌을 준다.


옴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대여하러 도서관에 가니 열람실에는 없고 서고에 있다 한다. 담당 사서가 서고에 가서 찾아온 <추의 역사> 거의 오랫동안 찾는 이가 없었는지 곰팡이 진 얼룩이 보인다.

“잠깐만요. 책 소독기에 돌리고 드릴게요.”

<미의 역사>가 먼저 소개된 책이었지만 <추의 역사>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미의 역사>를 펴낸 이후 < 추의 역사 >를 다시 쓰게 된 옴베르토 에코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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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빌려온 <추의 역사>를 펼치는 순간.... 나는 빌려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낯선 것을 넘어서 보고 싶지 않은 것, 괴기적인 것, 섬뜩한 것, 음습한 것, 광기 어린 잔인함.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마녀, 사탄, 악마, 괴물은 추함의 상징이고 미녀, 영웅, 신, 천사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궁핍, 빈곤, 허기, 가난은 추함의 모습이고 부유, 여유, 풍족은 아름다움의 모습이다. 미의 관점은 광범위하나 우리의 사고 속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이분법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곧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은 진리이며 진실한 것처럼 인식된다. 아름다운 자는 정의로운 자, 선한 자, 뛰어난 자, 좋은 기운을 지닌 자로, 추한 자는 악한 자, 어리석은 자, 열등한 자로 인식한다.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추한 것은 악한 것이다. 젊음이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면 낡음과 늙음은 추함의 상징인가? 아닐 것이다. 생동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도 있지만 정지된 것, 정지되어 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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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궁핍하지만 행복한 사람과 부유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아름다움과 추함의 어느 범주에 속할까. 또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나 사악한 사람과 추한 외모를 지녔으나 선한 사람은 미와 추의 어느 범주에 속할 수 있을까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괴물들은 우리나라 궁궐 지붕에 있는 잡상과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섬뜩하고 추한 것들을 배치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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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함 > 이 가득 차있는 책장을 넘기는 것이 불편한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옴베르토 에코가 <추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시대적으로 정형화된 아름다움으로부터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해방시키고 싶은 의도이거나 추의 왜곡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추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미의 역사>를 통해서는 에코는 아름다움을 ‘미학’이라는 관념에만 가두어두지 않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의 변화 과정을 자유롭게 보여준다.

옴베르토 에코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미와 추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관념, 편견을 깨부수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우선 어디까지가 아름다움이고 어디까지가 추함일까라는 한계를 정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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