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고 결혼했다. 나의 남편은 미카엘 고넨박사로 지질학자이며 성품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우리들은 십 년 전 테라 상타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히브리 대학 1학년이었고 그 당시는 아직 히브리 대학의 강의를 테라 상타 대학에서 받을 때였다.
예루살렘의 가을이었다.
미카엘이 대꾸했다
‘당신이 결혼할 사람은 아주 강한 사람이겠군요.’
가벼운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짙은 회색 안개가 끼어있었다. 건물은 무중력 상태로 보였다. 미카엘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미카엘은 낡아빠진 계단 손잡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는 말아줘요.‘
차가운 빗발이 치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일주일 후 키부츠 티랏 야아르에 찾아가서 그의 오랜 여자 친구와 그녀의 남편을 만나던 날, 미카엘은 그녀의 남편과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그 후 집을 나와 삼나무 길을 걷는데 매서운 바람이 전신을 후려쳤다. 외투 깃을 세우고 말없이 걷는 그의 형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일부러 한나는 뒤처지게 걸었지만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앞으로만 걷고 있다.
저 그림자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 미카엘은 한나를 자기 생각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듯 자기 안에 몰두해 있는 그림자다. 그렇게 빨리 걸을 수 없다는 한나의 말에 조금만 더 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는 미카엘. 세상에 행복이란 없어.라고 삼나무들이 속삭이는 것 같은 겨울밤이었다.
결혼 후 3월이 가고 4월도 절반이 지났다. 예루살렘의 겨울은 길고 힘들었다. 창가에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유리창에 입김을 불고 화살이 박힌 심장, 마주 잡은 손, HG MG HM이라는 글자를 그리곤 한다.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서둘러 글자들을 손으로 닦아내는데 미카엘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알았다. ‘차가운 손에 따뜻한 심장’이라고.
임신을 하면서 한나는 강의 듣는 것을 그만두었다. 연습장에 황폐함이라 적었다. 일상에 지쳐갔다.
한나가 임신 6개월째 미카엘은 학위시험에서 2등을 했고 두 번째 학위를 준비했다. 자발적으로 식품점, 채소가게, 약국 등을 다녀왔지만 그는 참 묵이라는 마음속 결의를 깨뜨리고 말한다. 자신이 그렇게 태평하고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착각) 하지 말라고..
둘은 일종의 불편한 타협에 처해있는 것 같다.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나란히 안게 된 여행자들처럼. 예절, 이해, 인내심, 피상적인 잡담, 절제된 동정심 따위..
어느 날 밤 미카엘은 불을 끄고 가끔씩 내가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무슨 광물의 이름을 읊조리듯 말했다
‘난 우울한 거예요.’ 그것뿐 이라고요.‘ 한나는 속삭인다
겨울 내내 바람 하나가 예루살렘 소나무 꼭대기를 흔드는데 그 바람은 사라지면서 소나무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당신은 낯선 사람에요. 미카엘. 당신은 밤마다 내 곁에 누워있지만 낯선 사람이에요.
1951년 3월 야이르가 태어났고 미카엘은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아기의 기저귀를 빨고 꿀을 탄 우유를 한나에게 건네준다. 그는 밤에 잠옷조차 갈아입지 않고 밤새 책을 읽으면서 아침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새벽 두세 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빈 파이프를 씹으며 공부를 했다. 에세이 점수를 매기는 일과 기술 관련 영어 기사를 번역하여 번 돈으로 전기난로, 야이르의 유모차를 사주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미카엘은 지질학과 조교자리를 얻었고 그 가을 한나는 사라 젤딘 유치원에서 하루 다섯 시간씩 일을 시작했다. 결혼 후 빌린 돈들을 갚아갔지만 유월절 전날 한나는 미카엘과 상의도 없이 값비싼 소파와 안락의자를 사버려서 새 아파트 계약금을 모으지 못했다.
발코니에 미카엘만을 위한 서재를 만든다. 서재와 침실은 유리문으로 갈라져있고 독서용 램프 불빛이 엄청나게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자는 완전한 침묵 속에 있다.
우리들은 오후에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소금 좀 건네 줄래요 이것 좀 도와줘요. 저녁 준비 다 됐어요.. 9 시 뉴스를 보고 나서 미카엘은 책상 앞에 앉아 독서용 안경을 낀다. 한나는 외국 방송국에서 나오는 댄스 음악을 듣고. 열한 시에 잠이 든다. 벽에는 수도관이 있다.
숨겨져 있는 물 쏟아지는 소리, 기침, 바람 소리들...
둘째 아이를 임신한 한나.... 야르데나는 미카엘의 박사논문을 타이프해주겠다고 나섰다. 미카엘은 그 보답으로 그녀의 최종 시험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매일 저녁 미카엘은 단정 깔끔하게 차려입고 대학 캠퍼스 언저리에 있는 야르데나의 방으로 간다.
한나는 인정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든 것을... 한나는 동요되지 않지만 저녁때가 되면 미카엘은 안절부절못하고 산란해진다. 그의 미소는 피하는 듯하며 죄지은 듯하다. 한나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안녕 미카엘. 나는 창가에 서서 김 서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그릴 거예요. 손을 흔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 당신의 환상도 깨트리지 않을 거예요.
난 당신과 함께가 아니에요. 우리는 두 사람이지 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더 이상 내게 사려 깊은 장남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요. 잘 가세요.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게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나에게도. 미카엘 오누이 사이인 당신과 나를 여러 관계가 가능하지요. 어머니와 아들, 언덕과 숲, 돌과 물, 음직임과 그림자. 소나무와 바람...
쌍둥이들을 보냈다. 새벽이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지치고 따뜻해져 올 것이다. 땀과 거품의 냄새를 풍기면서. 평화로운 미풍이 소나무를 건드려 흔들어 놓는다. 먼 하늘이 서서히 창백해진다. 그리고 저 광대한 공간에 조용하고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1956년 수에즈 위기 전후를 무대로 한나 고넨과 미카엘의 사랑과 결혼 생활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의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진 한나의 팔꿈치를 미카엘이 붙잡아준 것을 계기로 시작된 그들의 인연, 행복하리라는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그런 일상의 반복 속에 한나는 심한 결핍을 느낀다. 한나의 결핍은 꿈과 현실에 자주 드러난다. 강한 남자에 대한 환상, 쌍둥이들(할릴,아지즈)과의 어린 시절 인연, 아버지, 시아버지에 대한 기억, 한나와 미카엘을 둘러싼 친족들. 미카엘 주위를 맴도는 여인들과 한나를 주시하는 이웃 청년.
미카엘은 결혼 전이든 결혼 후든 자신의 궤도에서 단 한 번도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외견상 한나의 꿈은 드러나지 않고 한나의 일상은 미카엘과 미카엘을 닮은 아들 야이드 잘만에 묻혀 있다.
옮긴이 최창모는 해설에서 미카엘과 한나의 만남을 '불'과 '재'의 만남이라 규정하고 있다.
미카엘은 이상, 꿈과 같은 것 ‘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현실. 이미 불이 타버리고 남은 ‘재’에 불과하다고... 미카엘은 주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정확하게 돌기를 바라는 남자다. 반면 한나는 가슴 안에 자신을 태우고도 남을, 자신을 태울 수도 있을 ‘불’을 지니고 있다.
재는 동요하지 않는다. 이미 타버린 것, 이미 내려앉은 것들, 어떤 바람도 재을 다시 일으켜 세워 타게 하지 못한다. 불은 바람에 예민하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불에 영향을 미친다.
불은 예측 불가한 것. 타오름의 방향상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도 언젠가는 재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미 재로 존재하는 남자. 평온하고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고 성실하며 일상적인... 학구적이며 친절하고 조용한 남자 미카엘. 불이라 칭할 수 있는 한나는 꿈속에서 여전히 쌍둥이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강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타오르고 싶은 한나의 불은 너무도 평온하고 침착하고 규칙적인 남자 미카엘에 의해 제대로 타오르지 못한다. 미카엘이 그녀의 불을 타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나의 미카엘’에 갇혀있는 것이다. 제대로 타지 못한 그녀의 불은 우울증으로 나타나고 쇼핑 중독으로도 나타난다. ‘불’과 ‘재’의 만남은 ‘불’과 ‘물’의 만남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아모스 오즈의 『 나의 미카엘』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서 나는 다시 앞으로 가서 책의 제목을 살폈다. 책 제목은 여전히 ‘나의 미카엘’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문득 책의 제목이 ‘안녕, 나의 미카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미카엘’과 ‘안녕 나의 미카엘’은 분명 다르다.
한나는 끝내 미카엘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서리 낀 유리창에 입김을 호호 불며 두 사람 이름의 이니셜을 쓰던 오래전 그녀인 채로.. 그녀가 글씨를 지우는 것을 멀리서 걸어오는 미카엘이 손을 흔드는 것으로 알아차라는 환상을 깨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불'과 '재'에게는 이미 태어난 야이르 잘만.. 그리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가 있다.
한나는 밤새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은 일상을 어찌할 수 없다.
누군가와 살아간다는 것...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동행이 되어 그 동행이 삶의 동행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삶은 기차 여행의 연속일 것이다. 멈추지 않는다. 옆자리의 동행과 한나와 미카엘이 그러한 것처럼 일상의 건조한 대화를 나누고. 피상적인 잡담을 나누고. 뉴스거리들을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균형과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친밀감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적당한 사회적 도덕적 경계의 선을 넘지 않으며...
남들이 보기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의 맨 첫 문장은 이러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내 안의 어쩔 수 없는 힘들. 어쩌면 나도 한나처럼 불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특이하게도 미카엘의 ‘재’를 겉에도 두르고 있으니.... 불과 재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나는 때로 불이고 나는 때로 재다.
어쩔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이 일어 나를 태운다. 어느 순간 그 강력한 불꽃은 사그라지고 나의 일상은 다시 재의 일상이 된다. 규칙적임, 이성적임, 논리적임, 성실함......
불을 감추고 있는 재...... 불이 아닌 재, 재가 아닌 불, 불도 재도 아닌 사람, 타고 있는 재와 타지 않는 불...
그 경계 어딘가에 내가 있다.
도나 마르코바의 시를 읽는다.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 도나 마르코바 -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는 도나 마르코바의 목소리와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죽고 싶지 않다."라고 외치는 한나의 목소리가 자판 위에서 겹친다.
그 목소리들 사이 나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는.... 내가 본래의 ‘나’인 채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불'도 '재'도 아닌 그러나 '불'이면서 '재'이기도 한....... / 려원